여기 아오모리의 핫코다산 자락에 풍력발전을 설치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토요일 풍력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는 의무다.
아오모리는 한자로 하면 青森(청삼)이고 풀어쓰면 푸른 숲 정도 된다. 지역명에서도 알 수 있듯 자연이 울창하고 잘 보전된 곳이다. 아오모리 시에서도 상징적인 자연이 핫코다산(八甲田山)이라고 보면 되겠다. 핫코다산은 산 봉우리가 많고 습원도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일본어에서 팔八은 많다는 의미이다)
회의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거의 만석이었는데 적어도 150명 정도는 참가한 것 같았다. 나는 10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 들어갔는데 앞에 자리가 거의 없는 것 같아 맨 뒤에 앉으려고 하니까 그 공간은 기자들 공간이라고 해서 앞으로 가서, 간신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먼저 약 한 시간 동안 기업 측에서 풍력발전을 설치해야 하는 이유,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지역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시급하고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태양광 에너지보다 풍력발전이 효율적이라는 설명 등이 있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참가자의 질문도 기업의 대답도 차분했었는데 갈수록 참가자들의 질문이 거칠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시간 관계상 1인 1질문으로 시작했다. 어떤 참가자들은 중에는 미리 준비해 와서 의견이나 질문을 읽기도 하였으며, 어떤 참가자는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참가자는 재판에서 신문하듯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면 다시 질문을 해나갔다.
참석자들의 의견과 질문은 100% 풍력발전사업 반대였다. 주요 반대 이유는 이번 풍력발전개발 사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실직적으로 도움이 안 되고, 자연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실제 아오모리 풍력발전으로 발생한 많은 전기는 동경이나 아오모리 외의 전력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산림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풍력발전기 1기를 설치하기 위해 땅을 파고 레미콘 약 200대의 콘크리트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흙들을 처리할 방안도 애매해 보였다.
이런 설명회는 처음 참석해 봤는데 사람이 비교적 많았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차분하게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모습이 성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기업의 반응이 차분해서 조금 의외였는데 알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끊임없이 반대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는데 그럴 때마다 기업 관계자는 주민 여러분들의 걱정을 잘 알겠으며, 충분히 검토해서 자연 파괴를 최소화하겠으며 주민들이 원치 않으면 사업을 철회하겠다는 얘기를 몇 번이고 했다.
그래서 한 참가자가 나도 궁금했던 질문에 나섰다.
"주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여기 풍력발전계획을 철회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감사한 말씀이시네요! 말씀 잘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명확하게 해 둡시다! 주민 동의를 못 얻을 경우 철회한다고 하셨는데, 철회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세요!" (모두 박수)
"질문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오늘 여러분 의견을 잘 들어서 여러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환경 파괴를 최소화해서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철회 기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만약 지자체에서 반대한다면 저희들은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웅성웅성, 우~)
뭐 대략 이런 질의응답이었다. 즉, 지자체 정치인과 공무원들과 얘기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설명회는 왜 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에게 직접 사업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기업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반발과 질문에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후변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더 이상의 변화를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중심에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풍력 발전은 분명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역 환경과 지역 주민을 고려하지 않은 발전을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지인은 20년 전에 아오모리 지역에서 클라우드 펀딩으로 풍력발전기를 설치해서 잘 사용하고 이미 해체까지 끝냈다고 한다. 그때는 반대가 없었는지 물어보니, 설치한 장소가 거의 황무지였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라서 거의 반대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기업의 풍력발전계획으로 풍력발전이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 하면 모든 일정이 끝날 줄 알고 참가했었는데 2시간 30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아, 다음 일정 때문에 함께 갔던 지인들과 먼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히로사키로 이동해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지역의 와인 전문가만 안다는 40년 된 와인 바에서 뒤풀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