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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꾸라지 Mar 04. 2023

내 부탁 안 들어줘서 고맙다!

개학이 코앞이다. 보람이(가명)이는 3월 2일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방학 중에도 주로 등교해서 돌봄 교실, 방과 후 교실, 하교 후에도 주로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맞벌이 부모를 둔 운명. 한참 놀아야 할 나이인데..좀 안쓰럽다. 특히 요 나이 때 방학은 특별한 기간일 텐데...


그래서 2월 28일 시간을 냈다. 바쁜 일정을 미루고 하루 통째로 놀아줄 수 있게 시간을 마련했다.  

"화요일은 아빠가 시간을 냈는데 학교 가지 말고 어디 놀러 갈까?"

"어디?"

"보람이가 가보고 싶은 곳, 어린이 대공원?"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서 놀이기구 타는 걸 아주 좋아한다. 평일이면 사람이 적어 쉽게 많은 걸 탈 수 있다고 말해줬다.

"음..."

근데 반응이 별로다.


"아니면 아빠가 보람이랑 같이 가보고 싶은 곳, 청계산 등산?

심신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다. 아빠의 욕심이다.

"글쎄.."

반응이 좋을 리가 없다. 어릴 때는 자주 데려갔는데 요즘은 거의 안 간다.

꼬맹이 때는 청계산에 가끔 가곤했다


"아니면 실내 암벽 등반, 클라이밍 한번 하러 가볼까? 지난번에 TV에서 클라이밍 하는 거 보고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마음이 변했어. 지금은 별로야"

'아 그러시군요...'


"조금 고민 돼.."

놀러도 가고 싶고, 학교도 가고 싶고 그런가 보다.

"그냥 학교에 가고 싶어?"

"응, 돌봄교실에서 언니들이랑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돌봄 교실은 2학년과 3학년이 함께 지낸다고 한다. 돌봄반에는 돌봄반에서만 만나는 친구들, 언니들이 있다고.


"그래도 봄방학인데 어디 한번 다녀오는 게 기억에 남지 않을까? 청계산 어때? 힘들면 아빠가 업고 올라갈게"

청계산에 한번 데리고 가고 싶어 간절히 부탁했다.

보람이는 공부하는 시간에 비해 운동 시간이 너무 적다. 심신이 튼튼해야 할 텐데 공부, 유튜브, 휴대폰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좀 생각해 볼게"

"그래 그럼 좀 생각해 보고 내일 저녁까지는 말해줘. 옵션은 다섯 가지야. 1. 등교, 2. 어린이 대공원, 3. 청계산, 4. 클라이밍. 5. 그 외에 가보고 싶은 곳"

"응 알겠어"


다음날 숙제를 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자기 전에 나를 불렀다.

"아빠, 나 그냥 내일 학교 갈래"

"알겠어 아쉽지만 할 수 없지 뭐"


아무래도 학교 가는 게 좋은가보다. 함께 놀아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아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함께 추억을 만들려 모처럼 시간을 마련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방학 때 매일 학교 보내는 게 마음이 편치 안 았는데, 본인에게는 그렇게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 최소한 아빠랑 함께 노는 것보다는 학교가 재밌는가 보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비자발적 1일 휴식을 가졌다.

'그래 내 부탁을 안 들어줘서 고마워! 아빠도 푹 좀 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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