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살다 보면 “사고” 같은 나쁜 소식이나 일이 있게 마련이다.
나이보다 십 년은 젊고 예뻤던 우리 엄마가 혈액암(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으신 소식. (엄마는 약을 계속 드시고는 있지만 다행히 완치되셨다)
관절이 좀 아픈 줄 알았던 아빠가 말기 암 진단을 받게 되신 소식.
요양원에 계시던 우리 시아버지가 코로나 시기 잘 지내시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
어느 날 갑자기 검진에서 콜레스테롤이 높고 경동맥초음파에서 혈관두께가 두꺼워졌다며 고지혈증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소식.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듣는 것.
나쁜 소식을 듣게 되면 처음에는 현실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하기도 하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보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생각에 잠기고 감정적이 되기도 했다가, 점차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여 견뎌내면서 통과하게 되는 것 같다.
몇 번 있었던 일이긴 했지만, 이번 권고사직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사전에 어떤 낌새도 없이 하루아침에 왔다. 대부분 회사를 떠날 때쯤 되면 느낌이 오게 마련인데 이번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적응 되었고 마음에는 열정이 있었고 회사 분들과도 라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번 주 수요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해가 뜨기도 전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회사 도착할 무렵에 대표님으로부터 오피스에서 좀 보자 하는 문자를 받았다. 해외 출장을 같이 가자고 하시려나, 어제저녁 늦게 터키 병원과 화상 회의 마치고 난 뒤 무슨 지시 사항이 있으려나 했었다. 약간의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실체가 없는 딱히 이유가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었다. 리코딩하지 않아 어떤 워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던 일 이번 주까지 마무리하고 인수인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번일 같은 중요한 일의 전체 책임을 맡기기엔 너무 ‘나이스’ 하기만 해서 다른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에지 있게 일처리가 되기 어렵다, 느슨하고 일에 최우선이지 않은 듯하다, 당초 기대와 많이 달라서 더 끌어봐야 의미가 없겠다 즉 ‘나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는 것이었다. 사실 비참한 마음이 더 들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자신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 사무치는 정도는 아니다. (아마 좀 지나고 재취업이 안되면 점점 실감이 되려나) 지금의 지배적인 생각은 이렇게 나가면 다른 직장을 또 구할 수 있을까 어쩌지, 남편에게 뭐라고 하지, 춥다 정도의 느낌이다. 아직 머릿속에 이 회사의 일을 모두 내려놓지 않은 (나름 열정을 가지고 잠을 자면서도 머릿속에서 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근무 마지막 날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권고사직을 당한 수요일은 점심 먹고 회사를 나와서 단골 헤어샾에서 뿌리염색을 했다. 마침 제주도에서 서울 와 있는 친구가 아직 서울에 있는지 확인하고 한남동에서 만났다. 다른 친구와 선약이 있었는데도 고맙게도 나를 끼워주었다. 함께 미술관 전시도 가고, 이태원 으슥한 골목을 지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도 가보고, 한남동 골목 식당 중에 가수 윤종신이 한다는 월간 식당에 가서 저녁이랑 와인도 했다. 제주에서 갓 딴 맛있는 귤을 얻어먹었는데 또 신세를 졌다. 수요일은 차마 권고 사직 당했다는 말을 못 했는데 이제 차차 소식 전하고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그래도 내 소중한 보물 서현이와 나와 서현아빠가 건강하고 온 가족이 무탈한데 다시 힘 내 보아야지. 하나님 사랑을 믿고 그 은혜를 기대어 보아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무대 위로 맘대로 올라가 젓가락 행진곡 같은 유치한 연주를 했을 뿐인데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협주를 해 주어서 그 분위기를 다 바꾸어 버리듯이, 하나님이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