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
어릴 적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누군가 조금만 얼굴을 찡그려도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선택한 가장 쉬운 방법은 ‘웃는 것’이었다.
웃으면 상황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상대방의 마음도 금세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웃는 얼굴은
내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
그래서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사람.
그것이 내가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언제나 불안이 숨어 있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나를 늘 웃게 만들었다.
웃음 뒤에 남겨둔 진짜 마음
문제는 그 웃음이 점점
내 마음과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고,
미소 뒤에서 감정은 얼어붙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진짜 행복해서 웃는 건지
아니면 또다시 습관처럼 웃고 있는 건지.
누군가가 내 안의 슬픔과 두려움은 전혀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웃음만으로 나를 평가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서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웃음을 스스로 지켜내려고 애썼다.
웃는 얼굴이야말로 내가 세상과 맺은 일종의 약속 같았으니까.
웃음은 분명 힘이 된다.
웃으면 내 마음도 조금은 풀리고,
상대방의 마음도 함께 열리곤 한다.
솔직히 말해, 나를 살게 해 준 것도 그 웃음이었다.
하지만 웃음은 동시에 무게가 된다.
진짜 감정을 감추고, 상처와 고통을 덮어버리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기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웃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을 배신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가끔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웃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너 지금 진짜 웃고 있니? 아니면 웃어야 하니까 웃는 거니?”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할 때,
나는 비로소 웃는 얼굴의 무게를 실감한다.
요즘은 억지로 웃지 않으려 한다.
울고 싶으면 운다.
그 후에 찾아오는 웃음은 조금 다르다.
애써 지켜내는 방패가 아니라
마음이 풀려 자연스레 번지는 미소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웃는 얼굴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웃음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내 마음을 지켜주는 힘으로 바라본다.
웃는 얼굴은 여전히 내 삶에서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그 웃음이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억지로 쓴 가면이 아니라
내 안에서 녹아내린 눈물 위에 피어나는 미소여야 한다.
눈물로 단단해진 웃음은
나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빛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그림 휘야야 https://www.instagram.com/p/C0oYcHxPZEf/?img_inde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