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우울이라는 감정은 교묘하다

by 휘야야 HWIYAYA

나는 꽤 오랫동안 ‘우울’이라는 감정을 알고도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마치 늘 곁에 있지만 굳이 이름 붙이지 않은 그림자처럼

존재를 알아차리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때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때로는 아직 젊다는 이유로

그 불청객을 문 앞에서 돌려세운 채 모른 척하며 살아온 것 같다.


20대의 나는 불안정했지만 동시에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는 더 잘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젠가 빛날 수 있겠지.”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눈물이 쏟아질 만큼 마음이 무너져도,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30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의 무게가 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그래도 40대쯤 되면 무언가 되어 있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우울은 그저 지나가는 계절 같은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그때의 믿음은 희미해졌다.

나는 여전히 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저 40대 애기 엄마’라는 정체성이 전부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뚜렷한 이름표 하나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루저’라는 단어가 불쑥 고개를 든다.

그 단어는 내 안에서 오래된 우울과 손을 잡고, 나를 무기력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하루하루는 아이를 돌보며 분주하게 흘러가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다.

책상 위에 펴놓은 공책은 깨끗한 채로 며칠째 자리를 지키고

하고 싶다고 말하던 일들은 늘 ‘언젠가’라는 시간 속으로 미뤄진다.

어떤 날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SNS 속 반짝이는 모습들은 나를 더욱 작게 만들고, 결국 나는 다시 스스로를 탓한다.

“너는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니.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니.”

그 자책이 깊어질수록, 몸은 더 무거워지고 마음은 더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는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교묘하다.
처음에는 작은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 전체를 잠식한다.
아무 일도 하기 싫게 만들고, 설령 무언가를 하더라도 금세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삶의 색깔을 모두 빼앗아가 버린 듯, 회색빛의 하루만 남겨 놓는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때는 그런 우울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 믿음이 있었기에 우울은 금세 흩어지는 안개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그 속삭임은 희망을 대신하고, 내 마음을 더욱 깊이 무너뜨린다.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우울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는 것을.
한때는 밀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나를 온전히 삼켜버리려는 커다란 그림자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래서 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빛으로 우울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우울을 지워낼 수는 없지만, 빛으로 덮을 수는 있다.

삶의 색깔을 빼앗는 우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작은 색 한 점을 찍는다.

그 색이 모여 언젠가 다시 내 삶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을 믿으며.




글/그림 휘야야 https://www.instagram.com/hwiya_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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