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의 쓸모

by 향글

내가 항상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다. 누구는 가족사진, 아이사진, 또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또는 행운을 불러온다는 부적 등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내 명함 들이다.

그것도 내 첫 직장에서부터 마지막 직장까지 그동안 만들었던 명함들이 한 자리에 모두 있다. 심지어 대학원 다닐 때의 명함도 있다. 그때는 학생이었는데 명함이 왜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학생회의에서 결정이 되어 모든 학생들이 명함을 만들었었다. 직급이나 직책도 없었던 단순히 개인 연락처만 있었던 명함이었는데 그 명함을 만들고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7~8개 정도 되는 명함에는 다양한 직책들이 있다. 단순 사원에서부터 대리, 과장, 차장 그리고 원장까지 어찌 보면 나의 일대기를 아주 간추려 요약해 놓은 ‘미니미’ 같은 것이다. 처음 취직했을 때, 또는 승진했을 때 새로 만든 명함이 어찌 그리 좋던지… 처음 명함을 가졌을 때의 설렘은 세 번째, 네 번째 명함을 거듭하며 이내 곧 시들어간다. 이제 명함은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고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책임이 되어 내 어깨를 짓누르곤 했다.


명함을 한 번 만들면 500장 정도 되는데 딱 한 번 재인쇄했을 때를 제외하고 나는 그 500장 명함을 다 쓴 적이 없다. 지금도 마지막 만든 명함은 200장 정도 남아 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영업직이 아니다 보니 명함을 많이 쓸 일이 의외로 없었다. 명함을 새로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설레지 않고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게 된 어느 날 나의 명함 컬렉션이 큰 도움을 주게 된 사건이 하나 생겼다.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우리 커플은 외식을 하러 집 근처 식당가로 나왔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긴 했다. 바로 다음 날이 내 결혼식이었으니까. 당시에는 우리가 결혼한다는 감격에 젖을 여유도 없이 부산과 미국에서 오시는 우리 식구들을 마중 나가고 숙소까지 모셔드리느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차였다. 부모님은 우리 커플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저녁을 먹고 오신다고 했다. 결혼식 당일인 다음날은 아침부터 메이크업과 헤어도 해야 하는데 식구들 챙기는 것도 일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이게 맞나’ 허둥대고 내 행동과 결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 때였다.


식구들 맞이하고 부산을 떠는 와중에 내 지갑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날 나는 가방도 짐이 된다며 내 지갑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 발생한 일 같았다.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 커플은 지갑을 찾아 나섰다. 그날은 걸어서 집 근처 식당에 갔던 터라 저녁 먹은 식당과 걸어온 길을 되짚어가며 지갑을 찾기는커녕 지갑 비스무레 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정신이 하얘지고 손발에 피가 안 통해서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내일 결혼식만으로도 벅찬데 하필 오늘 지갑까지 잃어버려야 하다니…. 정확하게 돈이 얼마나 지갑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큰 금액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내 신용카드며 신분증이 다 지갑에 있는데 그 뒷 처리를 어찌해야 할지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는 토요일 저녁, 내일은 일요일 그리고 나의 결혼식… 뭐부터 먼저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서 내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였다.


“저 OOO 씨 핸드폰인가요?”

“네, 네 저예요.”

“아… 제가 지갑을 주웠는데요. 그 안에 명함이 있어서 전화드려봤어요”


아! 내 명함 컬렉션! 같은 이름의 명함이 줄줄이 있는 것을 보고 지갑 주인을 유추해 낸 거구나.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나는 목소리가 커지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횡설수설하며 늘어놓았다.

“네, 네 저예요! 제 지갑인데 잊어버려서 한참을 찾고 있었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제가 내일 결혼식이라 오늘 식구들도 와서 정신이 없는데 저녁 먹고 나오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렸나 봐요. 지금 계신 곳 알려주시면 제가 가지러 갈게요”

그러자 그 여자분이 다소 놀란 목소리로, “지금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은 주말 저녁이라 좋은 시간대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제가 내일 결혼식이라 시간이 안 날 수도 있어서’로 읍소하며 지금 당장 가겠다고 했다. 우리 집과는 30-4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도착하면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바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신랑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떡해’라는 걱정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지갑을 주운 사람은 너무 앳되고 평범한 20대 여성이었으며 주말 늦은 시간에도 기꺼이 나와 지갑을 전해주고 갔다. 식당가 근처 화단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주웠다고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나온 시간대랑 비슷했는데 근처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경찰서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해서 그냥 들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나는 정신도 없는 데다 지갑을 잃어버린 경험도 처음이라 고맙다는 인사만 연거푸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며칠이 지나서야 감사인사와 함께 카카오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 없이 지갑은 무사히 내 품으로 왔고 우리는 결혼식도 잘 치를 수 있었다. 살면서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나게 되지도 않는 고마운 인연들이 몇 명 있다. 이분 역시 그 고마운 인연 중 단연 1등으로 남아있는 분이다.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개인정보가 도용되는 무시 무시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사건이었다. 잃어버린 지갑을 마음씨 착한 사람이 주웠던 것도, 마침 지갑 안에 내 명함이 들어 있었던 것도, 그리고 잃어버리고 몇 시간 만에 지갑을 다시 찾게 된 것도 너무나 감사한 우연의 연속이었다. 내가 기억을 못 해도 나를 도와준 고마운 인연들은 분명 더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사는 세상이다. 착하게 살지 않을 수가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