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살았다

by 향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등 뒤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뭐야, 뭐야, 사고라도 난 거야’ 하며 뒤돌아서 굉음의 출처를 찾았겠지만 그날은 유독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나는 진동하는 듯한 폭발음에 몸이 얼어붙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내려앉았다. 곧이어 내 머리 위로 유리파편들과 붉은 살점들이 지나가며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이 유리병에 담겨 있다가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허공에서 떠 도는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이 사고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가 꾸는 여러 꿈들 중 하나였는데 ‘펑!’하는 소리가 날 때 내 심장이 배꼽 아래까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식은땀과 함께 잠에서 깼다. 2~3년 전부터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원래 예민해서 잠자리를 많이 가리는 편이고 결혼하고 나서는 부산 친정집에 가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 괜찮아, 생각보다 괜찮아’ 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대 때에는 그렇게 가위에 잘 눌리더니 나이가 들고 나서는 가끔 심장이 내려앉는 꿈을 꾸곤 한다. 이쯤 되면 정말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며 병원도 다녀 봤지만 병원에서 하는 검사에는 모두 정상으로 표시된다. 혹시 다른 곳에 문제가 있나 싶어 다른 장기들도 검사해 보지만 혈압이 조금 높거나 당뇨병 바로 전 단계의 혈당 수치가 나오는 정도로 일반적인 성인병 수준에 그친다. 뭔가 심각한 병이 있는 건 아니니 일단 안도한다.

몸은 피곤한데 잠을 푹 자지 못 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그 일이 지속되자 잠을 못 자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 몸이 잠에 곯아떨어지면 두세 시간 후에 꿈을 꾸며 깨는데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잠에서 깬다.


원래 잠을 잘 못 자는 건 아니었다. 10대 20대에는 잠이 많았고 아침마다 알람이 울리면 ‘5분만’ 하던 때도 있었다. 30대 후반부터인가 잠자는 게 어려워지고 가끔 수면제를 먹었고 술을 먹으면 세상모르게 곯아 떨 졌다. 40대에는 12시 1시를 넘겨 잠자야 할 시간을 놓치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고 그렇게 되자 나는 ‘잠자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마치 몸에 좋은 쓴 약을 꿀떡 삼키듯이.

잠을 못 잤다고 다음 날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일을 덜하지 않았다. 대신 실수 하지 않으려고 더 많은 카페인을 들이부었고 몇 배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정신 차려” 였던 것 같다. 지금도 “정신 차려” 는 나에게 “파이팅”이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각성’이라는 말을 좋아했고 ‘명확’, ‘샤프’, ‘단단’해 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40대 후반에 들어선 어느 날부터 저런 꿈을 꾸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을 경험한 뒤로 내 몸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은 공포로 다가온다. 숨을 안 쉰다는 것은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무섭다의 아버지 뻘 느낌이다. 공포를 느끼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몸이 얼어붙고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런 꿈을 꾸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사는 게 별로 재미없었고 기대되는 것도 없었으며 내일 죽어도 무방하다 싶었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 할 때, 혹은 무서운 꿈을 꾸며 식은땀을 흘릴 때 나는 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 잡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절실히 살고 싶었으니까,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살라고 몸에서 보내준 신호 같았다.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별로 살고 싶지 않았지만 또 죽는 건 몹시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공포스러운 꿈에 심장이 내려앉으며 새벽 3시쯤 잠에서 깨면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엎치락뒤치락 잠을 청하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침대에 엎드려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쫌 억울하겠다. 해보고 싶은 걸 다 못하고 죽는다면 말이야”

그래서 난 퇴사하고 나를 더 살피기로 했다. 퇴사하고 태국 치앙마이로 한 달 살기도 다녀오고 국내, 해외여행도 몇 차례 더 다녀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조향 공부도 하고 지금은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을 배우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 곁에는 나랑 여행 가는 게 제일 좋다는 사진작가 남편이 있다. 행복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는 나와는 성향이 정반대인 낙천적인 사람이다. 물론 그도 예민한 편이고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나와는 잘 맞춰 가며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마음의 여유를 갖는 연습을 하고 있다. 뭐든 생각한 것처럼 잘 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지고 내 취미 생활에 몰두하며 그래도 사는 게 조금 재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으면 우울증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많고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게 열중해서 하는 것들이 있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독서욕구가 솟구쳐서 블루투스 이어폰 배터리가 다 끝날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곤 내가 좋아하는 안마의자에 앉아서 계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실 창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눈이 와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날이 흐려도, 날이 화창해도 좋다. 오늘 보니 며칠 사이 초록 형광색이 된 나뭇잎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여전히 무서운 꿈을 꾸고 새벽에 깨기도 하지만 예전만큼 공포스럽지는 않다. 퇴사를 했다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거나 여유로워지지 않는다. 나는 원래 강박과 우울감을 디폴트 값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 나를 끌어안으며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느낀 다는 건 살고 싶다는 아우성이니까.



사진출처: freep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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