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부터 향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중학교 때 친구의 교복에서 나는 향기가 좋아서 교복 빨래를 할 때면 린스에 담가서 빨았던 기억이 있고 미국에서는 친구 부모님이 하시는 꽃집에서 나는 유칼립투스 향에 매료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당시에는 그 향이 유칼립투스 향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유칼립투스 가지를 잘라서 말린 일종의 드라이플라워 향이다. 말린 유칼립투스에서는 코가 뻥 뚫릴 것 같은 시원한 허브향은 사라지고 대신 오래된 고가구에서 맡아볼 법한 나무 말린 향이 난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먼지 냄새 같기도 한 그 향을 나는 그 향이 '꽃집 향'이라고 생각했고 그 향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그 향이 말린 유칼립투스라는 것을 한 참 뒤에, 정말 한 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잊고 지냈는데 작년 즈음에 선물로 받은 꽃다발에서 예전에 기억하던 향기가 나는 것이었다. 유칼립투스 중에서도 블랙잭이라고 불리는 동글동글한 잎이 회오리 감자처럼 길게 나 있는 허브종류인데 꽃다발 만들 때 그린소재로 많이 쓰인다. 유칼립투스는 향 자체가 매우 존재감이 있어 그냥 지나 칠 수 없다. 다시 만난 유칼립투스가 너무 반가웠고 그 뒤로 꽃집에 갈 때마다 ‘절삭 유칼립투스’를 찾았다. 유칼립투스 블랙잭은 잘린 상태에서도 오랫동안 초록을 유지하다가 화병에 꽂아 두면 마를 때까지 그 향이 오래갔다.
그러자 욕심이 나서 유칼립투스를 키우면 그 향을 오래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음번 꽃집 방문 때 사장님한테 물어보았다.
"유칼립투스는 워낙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일반인이 키우기에는 많이 힘들 거예요" 하신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 키우기가 힘들다고. 얼마나 힘든지 해보자. 나는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다를 거야' 하며 특별히 잘 보살 피겠다 다짐을 하고 유칼립투스 묘목을 두 개 들였다. 작고 연약했던 모묙이 봄, 여름을 지나면서 정말 쑥쑥 자라나 날 기쁘게 했다. 키우기 힘들 거라는 꽃집 사장님의 말이 무색할 만큼 튼튼하게 잘 자랐다. 물과 햇볕을 좋아해서 창가에 두고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에 한들 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기대했던 향이 폴폴 나는 것은 아니었고 다른 허브들처럼 바람이 불 때나 손끝으로 만졌을 때 허브향이 강하게 난다. 유칼립투스 생화와 마른 유칼립투스는 향이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향은 마른 유칼립투스 향이다. 향기는 정말 주관적이고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매력적이다.
내 기억에 마른 유칼립투스 향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쇼핑몰을 상기시키고 그 당시 눈으로 담았던 행복한 모습들이 향기를 통해 전달이 된다.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하는데 유칼립투스 말고 시나몬이나 브라우니 굽는 냄새 또한 크리스마스 기억에서 빠질 수가 없다. 내가 유칼립투스 향을 좋아한 다는 것을 게 되기까지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내가 만들고 싶은 향이 말린 유칼립투스 향이다. 그 뒤로도 내가 좋아했던 향들은 다양하고 많았다. 고등학교 때 사촌언니의 화장품 파우치에서 맡게 된 향수, 트레졸 그리고 당시 절친이 뿌리고 다니던 이터너티. 너무나 유명한 향수여서 대학생이 되자마자 내가 번 돈으로 산 첫 번째 향수가 이터너티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향수를 맡으면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주변에는 Cracker Jax라고 오래된 가구나 옷, 액세서리 등을 파는 조그마한, 정말 작은 골동품 샵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해서 그 안에 들어가면 넋을 놓고 매장 안을 샅샅이 헤매고 다녔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혼자 매장을 샅샅이 훑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았기 때문에 정말 자유롭게 매장을 누빌 수 있었다. 상점에서는 기억에 남는 독특한 향들을 가진 물건들이 넘쳐났는데 내 친구들은 그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 오래된 물건에서 날 법한 나무 냄새, 화장품의 파우더리 한 향, 향수에 비교하자면 강한 오리엔탈 우디 향이 났다. 힘들고 지쳐 있을 때 그 매장에 찾아가 이것저것 보고 냄새 맡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내 대학생활에 안식처였다. 나중에 조향을 배우면서 샌달우드, 시나몬, 시벳 캣 오일, 앰버 등을 적절히 섞어 그 기억 속의 향을 비슷하게 흉내 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강렬한 향들이 내 20대를 지나갔고 한 동안은 내 또래들과 같이 대중적인 ‘다비도프 쿨 워터’, ‘불가리’, '돌체 앤 가바나 라이트 블루' 등의 패션 향수를 즐겨 사용했다. 그 밖에 아로마 오일, 향초, 나그참파 인센스에도 한 동안 심취해 있었다. 요즘에는 국내 향수 브랜드도 많아지고 다양한 향기 제품이 많이 나와서 코가 즐겁다. 향의 수준도 많이 높아져서 화장실에 뿌리는 탈취제도 향이 참 좋다. 조향수업을 들으면서 향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조향 수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나의 향기 탐구도 계속될 것이다. 향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입술에 숟가락을 대자마자, 차와 섞인 마들렌 조각이 입천장을 스치고 지나가자마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고, 그 감정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처럼,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감동이 나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