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숙제는 대충 휘갈겨 끝내고 모바일 게임에 몰두하는 아들을 볼 때, 영단어는 외우지 않으면서도 아이돌의 최신 안무는 완벽하게 꿰고 있는 딸을 볼 때, 오월 한낮의 뙤약볕 속에서도 암막커튼을 치고 주말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동생을 볼 때,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계속 사서 쌓아두는 알리익스프레스 중독자인 아내를 볼 때, 업무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옳다며 예전 이메일을 들춰가며 요목조목 따지는 부하직원을 볼 때... 정말 이 사람의 어느 부분을 칭찬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다.
우리는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고, 특별히 모자란 것도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칭찬을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만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장점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을 거라 믿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장단점을 꼼꼼히 생각해 본 다음, 아무리 작은 장점이라도 크게 부각될 수 있게 칭찬의 말을 찾는다. 하지만 듣는 사람 기분 좋게 하려고만 하는 칭찬은 오히려 아부하는 것 같아서, 칭찬하는 사람도 어색하고 칭찬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이런 칭찬을 어색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사회생활 잘한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런 칭찬을 해보았다. 괜히 상대방의 패션 센스에 대해 호감을 표시한다거나 건강이나 활기찬 에너지를 부러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어색한 칭찬들을 말이다.
정작 칭찬을 전하는 사람의 마음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 그 사람의 재능에 진심으로 탄복하며,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분명히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칭찬다운 칭찬이 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칭찬은 "당신은 능력자이시네요"였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나와 오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도와준 은인도 아니며, 심지어 교류한 시간도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전 직장 대표였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고, 내가 전 직장에서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아 의기소침해져 있었다는 사연은 더욱이 몰랐을 텐데, 당시 그 칭찬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줬다.
아마도 며칠 일하다 그만두는 직원이 많아서 나를 붙들어 두려는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통했다. 그리고 대표 또한 능력 있는 사람이 와서 함께 일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나를 그렇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채용이 결정되어 그 회사에 취직했을 때, 몇몇 직원들은 이미 나를 '능력자'라고 알고 있었고, 나는 그 호칭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덕분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회사에서 하나하나씩 만들어가며 아수라장 같은 초기 성장기를 거치고 회사와 함께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고, 나를 채용했던 대표도 떠났지만, 나는 그 회사에서 8년간 일하면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그 '능력자'라는 말 한마디로 나는 새로운 회사에 정착할 수 있었고, 잘 버텼고, 후회 없이 일했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칭찬보다는 피드백이 더 익숙하고, 그마저도 평가받는 기분이 든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실적을 내고, 나의 가치가 보너스로 환산되는 것도 좋지만, 칭찬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조건도 대가도 없는, 나를 정말 알아주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주는 힘은 특별하다.
우리에게는 칭찬할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많다. 큰 노력이나 시간이나 돈이 들지 않는 말 한마디를, 단지 진정성을 담아 상대방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사람들에게 감동하고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
나의 칭찬이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와 버팀목이 되어 작게나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칭찬해야 한다. 나의 칭찬처럼 그 사람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 마음이 전달되었을 때 칭찬의 진가가 발휘한다. 그런 진정성이야 말로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