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죽였던 나의 전적은 화려하다.
싱글이었을 때 로즈마리와 민트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방에만 있던 아이들을 옥상에 올려놓았다. 식물이니까 비도 맞고 햇볕도 쬐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 옥상에 두었는데 나중에 올라가 보니 허브들은 햇볕에 타서 모두 말라죽어있었다. 잠깐 비를 맞히고 들여놨어야 하는데 식물이니까 당연히 바깥에서도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 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허브는 햇볕보다 바람에 키우는 아이들이라고 직사광선은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무지로 인한 참사였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려고 포인세티아를 들여놓은 적이 있었다. 한들한들 예뻤던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멕시코가 원산지인 포인세티아는 추위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아니러니였다. 추위와 과습에 신경 쓰지 않으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고 다음 해까지 연명하기 어려웠다.
다음 해에도 포인세티아를 들였는데 이번에는 잘 키워보겠노라 다짐하며 포인세티아와 함께 율마도 데려왔다. 초록과 빨강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때는 정신을 차렸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샤워도 해주고 날이 좋으면 창가에 내어 놓고 바람도 쐬어주었다. 포인세티아와 율마는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도 미모를 뽐내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서 집단 사망이라는 처절한 최후를 맞이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오래된 전원주택이었는데 아파트 보다 난방이 덜 되는 추운 집에서 겨울을 보내다 보니 모든 화분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갔다. 예전 집 보다 볕도 덜 들고 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어 보지만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었더라면 그 화분들 모두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내 욕심에, 향이 좋다고 호들갑을 떨며 유칼립투스 화분을 또 들였다. 내가 좋아하던 화분이었던 만큼 나름 신경 써서 잘 키우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 한 달간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온 사이 안타깝게 저 세상으로 떠났다. 가기 전에 햇볕도 차단해 주고 물에 흠뻑 적신 신문지를 잘 덮어주고 갔었는데 한 달이라 시간을 버티기엔 유칼립투는 너무 연약했다.
최근에는 식물 키우기 난이도 최하인 스킨답서스를 수경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어제 보니 잎사귀 절반이 누렇게 떠 있는 것이었다. 스킨답서스를 담가 놓은 병에는 물이 다 증발해서 뿌리가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내가 스킨답서스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고 언제 물을 갈아주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방치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다고 그 존재도 잊어버리고 방 한켠을 채우는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했나 보다.
“이런, 불쌍한 것…”
노랗게 변해 버린 잎사귀를 떼내고 찬물로 씻어 주고 깨끗한 물을 담아 다시 병에 넣어 주었다. 스킨답서스는 정말 씩씩한 식물이다. 몇 주 동안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초록 잎을 유지하며 잘 버텨주었고, 연쇄살식마가 있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2년째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스』에서는 인간이 기술의 힘으로 사후세계를 오고 갈 수 있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 따르면 이생에서 한 행동들에 점수가 주어지면서 악업과 선업이 쌓인다고 한다. 이는 윤회설과 비슷한데, 살아생전에 했던 행동들이 다음 생에 영향을 주어 어떤 형태로 환생하게 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이 한 영혼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당신은 지난 생애를 통틀어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 거짓말을 8,254회 했고, 비열한 행동은 경미한 것 567회, 심각한 것 789회를 저질렀어요. 그리고 당신 자동차의 타이어에 45마리의 작은 동물들이 깔려 죽었어요. 또, 당신은 도박에 빠져서 가산을 낭비하기도 했고, 소음을 내며 자동차를 몰기도 했군요.”
라며 영혼의 행동을 점수화하여 설명해 준다.
이렇게 사후 세계에서 나의 삶을 계량한다면 나의 살식(殺植)은 분명 악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심코 저질렀던 나의 행동은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사건이다. 내가 만약 가브리엘 천사 앞에 선다면 이렇게 변명하고 싶다.
"전 정말 몰랐어요. 허브가 직사광선을 싫어한다는 것도, 포인세티아가 추위에 약하다는 것도, 유칼립투스가 한 달을 혼자 버티기엔 너무 연약하다는 것도요."
하지만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그 생명에 대해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이제는 알아야 한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단순히 물 주고 햇볕 쬐어주는 게 아니라, 작은 생명 하나와 꾸준히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주인을 잘 못 만나 유명을 달리한 식물들을 위해 속죄하며 부지런히 선업을 쌓아보련다.
스킨답서스야, 살아남아줘서 고맙다. 이번엔 정말 잘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