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하고 나서 친구가 ‘그 사람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종종 ‘착해’라든가 ‘귀여워’라는 말로 그 사람을 설명한다. 분명, 좋은 뜻을 가진 형용사이지만 ‘착하다’라는 것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직은 그 사람을 잘 모르니 이 정도로 이야기해 둔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귀엽다’라는 말도 ‘예쁘지는 않지만 그렇게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외모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막상 그 사람에게 특별한 끌림이 있다면 말은 한층 구체적이고 열정적으로 길어질 것이다. 하긴 몇 번의 만남으로 어떻게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몇 번은 더 만나보아야 하지만 호감이 없거나 인연이 없으면 그냥 착하고 귀여운 사람으로 남게 된다.
예전에 처음 사귄 남자친구를 데리고 사촌언니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우리 동생 어디가 좋아요?”라고 언니가 남자친구에게 물었었다. 남자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착해요”라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떨려서 말을 못 했겠거니 했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나를 향한 셀렘이나 애정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나를 많이 좋아했었다면 나를 더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을 찾아줬으리라. 처음에는 그저 곁에 있다 보니 연인이 되었고 우리는 6개월 정도 사귀다가 그가 1년간 어학연수를 간 사이 헤어졌다.
연애든 다른 만남이든, 누군가에게 '착하다', '귀엽다'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그 말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그냥 갖다 붙이는 말이며 너무 밋밋하고 성의 없는 수식어라 생각한다.
착하고 귀여운 사람 중 한 사람인 나는 다른 수식어를 원했다.
예를 들어, 당차다, 매력적이다, 카리스마 있다 등 착하고 귀여운 사람일수록 뾰족하고 거친 매력에 끌리고 팜므파탈과 옴프파탈을 동경하게 된다. 내가 외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여러 번 성형을 했을 것이다. 눈을 더 부리부리 하게 만들고 입술을 더 크게, 둥그스름 한 턱을 날렵하게, 지방 흡입으로 팔다리를 가냘프게 했었을 것이다. 한동안 성형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너의 개성이 없어진다’는 주변의 만류와 남남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결국 성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착하고 귀여운 아이는 성장하여 나이가 들어서도 ‘참 편안하고 인상이 좋은’ 여인으로 남게 되었다.
연애를 졸업하고 결혼을 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한 사람한테만 예쁘게 보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매력적으로 보일까’ 하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동그란 모양인데 억지로 별이 되려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었다. 자존감과 자존심. 비슷한 어감이지만 분명 다른 뜻을 가진 두 단어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자존감(自尊感, Self-esteem)
정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이며, 외부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자존심(自尊心, Pride/ Ego)
정의
자신에 대한 긍지나 자부심, 혹은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자기 모습에 대한 민감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고 GTP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나는 참으로 자존심 센 사람이었다. 외모에 대해서만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에서도.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아직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에 대한 가치의 기준이 밖에 있으니 누가 나보다 잘 나간다고 하면 질투가 나는 것이다. 또 나는 "누구에 비하면 난 참 다행이야, 행복해"라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지만,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당시 잠깐은 안도감을 주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내 자존감을 높여주지는 못 했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다. 여유 있는 모습, 자랑할 수 있는 자식들, 내세울 수 있는 명함 들, 부러움을 살만한 경험들까지 신경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진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 혼자 남게 되어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착하고, 귀엽고, 자존심이 센 사람이 될지
착하고, 귀엽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될지는 나에게 달렸다.
외부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태도는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아마도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오늘도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고 말을 건네본다. “참 괜찮은 사람이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