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여행 속 새로운 발견

by 향글

우리 부부는 베트남을 좋아해서 베트남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섬 중 하나 인푸꾸옥을 다녀왔다. 베트남은 어느 곳을 가도 관광지이지만 특히, 푸꾸옥은 관광만을 위해 개발된 지역이 따로 있어서 동네 하나가 거대한 놀이동산 같았다. 쨍쨍한 햇살 아래, 파란 하늘과 초록빛 야자수가 줄지어 서있는 베트남은 색감 필터를 입힌 듯 언제나 색조가 높은 곳이지만 형형색색 놀이동산처럼 꾸며진 푸꾸옥은 더 화려했다. 날씨나 기후도 마음에 들었다. 적도의 태양도 뜨거운데, 습한 기운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내륙의 더위와는 달리, 푸꾸옥은 미풍을 틀어 놓은 것처럼 항상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가 싹 가셨다. 건기에 가서 그런지 몰라도 습하거나 끈적거림이 없는, 상당히 뽀송하게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특히 해가 떨어지면 바람이 불 때 아주 선선했다. 푸꾸옥이 일몰로 유명하다고 해서 노을도 많이 구경하고 베트남 특유의 안일함과 늘어짐을 충분히 만끽했다.


이번 여행을 포함하여 아홉 번 정도 베트남을 와보니 새로운 감동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를 감동시키는 소소한 새로움이 있었으니 바로, 망꺼우 씨엠 (Man Cau xiem)이라는 과일의 발견이었다. 베트남을 그렇게 여러 번 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는 과일이었다. 그동안 망고는 흔하게 먹었고 파파야, 망고스틴, 용안과 같은 열대과일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일이 훨씬 더 많으리라. 망꺼우 또는 석과라는 과일도 먹어보았는데 Sugar Apple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우리 입맛에는 그리 스위트하지 않았고 식감 또한 물컹한 배 같아서 우리가 좋아하는 과일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두리안도 맛있다는 평이 많아서 시도해 보았지만 우리의 초딩 입맛은 늘 먹던 망고로 돌아갔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에서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망꺼우 씨엠을 접하게 되었다. 하루는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고 선베드에 앉아 책을 보는데 옆에 있던 러시아 여행객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 과일 좀 먹어 볼래요?”


돌아보니 젊은 러시아 여성 여행객 둘이 내 옆자리 선배드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과일을 한 접시 가득 담아 놓고 먹고 있었다.


“아, 괜찮아요”


나는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을 보이며 부드럽게 사양했다. 몇 분쯤 지났을까. 그 여성이 다시 나에게 과일을 권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먹어보는 건 어때요?”


영어로는 try just a little이었지만 ‘아이, 그러지 말고 조금만 드셔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조금만 먹어볼게요… 아니, 이건 너무 많고 조금만, 조금만 주세요.”


나는 한 입 정도를 맛볼 생각이었지만 어느샌가 내 손에는 수박 1/4만 한 크기의 정체불명의 과일이 들려졌다.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받아 들긴 했지만 망고나, 파파야 같은 익숙한 과일이 아니어서 순간, '이게 뭐지?' 했다. 냄새가 안 나는 것으로 보아 두리안도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으므로 내 얼굴 보다도 큰 조각을 받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첫 입을 먹고 나서 떠오른 것은, ‘음~ 비타민 C!’였다. 레몬처럼 쓰고 짜릿한 신 맛이 아닌 파인애플이나 딸기에서 나는 향이 가득한 신맛이었다. 과즙도 상당해서 먹는 동안 내 손으로 과즙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정말 특히 했던 것은 식감이다. 딱딱, 아삭, 물컹, 쫀득 등 내가 아는 과일 식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부드러운 스펀지를 먹는 듯한 느낌인데 결이 있어서 스트링 치즈처럼 결대로 찢어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먹는 모양을 굳이 글로 써보자면 '질겅 질겅' 정도가 될 것이다. 생김새도 식감도 친근하지 않은 이 과일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맛과 향이었다. 딸기와 파인애플을 합쳐놓은 듯 한 맛과 향, 그리고 저 뒤에 느껴지는 바나나의 향. 그리고 더 많은 무언가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과일 지식의 한계였다. 첫 입에 들어오는 신맛, 그리고 풍부한 과일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켜졌나 보다. 그녀도 마침 똑같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고 ‘그러게, 맛보길 잘했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씨앗은 먹지 말고 뱉으세요”


그녀가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누가 보아도 씨앗은 삼킬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어른 새끼손톱만큼 크고 새까만 씨앗은 단단하기까지 해서 잘 못 씹었다간 치과 신세를 면치 못 할 판이었다.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그 과일이 ‘몸에 좋은 비타민과 식이섬유’로 꽉 채워졌다는 것을 느낀 후 계속해서 먹기 시작했다. 먹다 보니 신맛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바나나처럼 달큼한 맛도 느껴지면서 먹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새 나는 수박 1/4 조각 만한 크기를 다 먹었다. 새카맣고 딱딱한 검은 씨앗을 튀, 튀 뱉으며.


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남편에게 그 과일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뭐라고 불리는지 몰랐다. 러시아 여자도 그냥 fruit이라고 했던 것 같고 정확한 이름을 몰랐다.


“두리안보다 조금 작은데, 초록색이고 표면에 울퉁불퉁 돌기 같은 게 있는데…”


남편은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시장 어느 좌판대에서 본 듯한 이미지를 상기시키며 남편은 어떤 과일인지 이해하는 듯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숙소 근처 과일가게를 들렸다. 내가 어제 먹었던 과일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Man Cau Xiem! 하고 답한다. 얼마인지 묻자, 1kg에 6만 동이라고 한다. 우리는 크기가 작은 과일을 원했지만 과일가게 아주어머니는 이 관광객 양반들이 뭘 모르시네 하는 얼굴로 이게 잘 익은 거라고 우리가 고른 과일보다 두 배는 큰 과일을 골라주었다. 성인 어른 주먹보다 큰 망고 3개가 2만 동이었으니 그 울퉁 불퉁한 개구리 등가죽 같은 과일은 비싼 축에 속했다. 아주머니가 골라준 과일은 속이 꽉 차고 잘 익은 2kg였고 12만 동에 하는 것을 10만 동에 주겠다고 해서 가져왔다.


나는 호기심과 반가움에 숙소에 와서 얼른 과일을 잘랐다. 표면을 덮고 있는 초록 껍질은 과육에 착 붙어있었고 손가락으로 뜯어도 분리가 될 만큼 얇았다. 망고 크기나 되어야 껍질을 벗기지, 나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수박처럼 과일을 반으로 가르고 또 반으로 갈라서 길게 4등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기고 또 한 입 크기로 조각을 냈다. 과즙과 식이섬유질이 풍부해서 몇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손에 묻힌김에 껍질을 모두 벗기고 조각을 내서 위생팩에 넣어 냉장보관했다. 과육이 딱딱한 편이 아니라 금세 상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음 날 먹어도 맛이 똑같을 만큼 맛과 향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망꺼우씨엠. 망고만큼 생김새가 예쁘거나 관광객에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숙소 앞에 과일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먹는 과일인 것 같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을 뿐. 망꺼우씨엠을 몰랐으니 과일가게에서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망꺼우씨엠의 영어이름이 Sour Sop이다

P.S 오늘 아침, 홍차를 끓이려고 차를 보관해 둔 찬장을 뒤지다가 Sour Sop이라는 차를 발견했다!

친구한테 선물 받은 차세트 중에 다른 차는 마시고 마지막 남은 것이였는데 이름부터가 Sour Sop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워낙에 신맛을 싫어하는지라 차에서도 신맛이 날 것 같아서 몇 년 동안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었다. 망꺼우씨엠과 안면을 튼 나는 반가운 마음에 Sour Sop 차를 끓였다. 쌉쌀한 홍차맛 위에 익숙한 과일향이 희미하게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