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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ㅠㄴ Apr 16. 2022

팝콘맛 벚꽃의 꽃말은 야간드라이브

 퇴근시간이 7시인 직장인은 저녁 5시가 되면 유독 퇴사를 하고 싶어진다. 남들은 퇴근이 한시간 남았는데 나는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다니. 이건 정말 불합리해. 째깍째깍 시간이 지나가고 6시가 되면 괜히 사무실 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넘겨짚기도 한다. 아무리 그지같은 직장을 다녀도 저 사람들은 지금 퇴근을 하는구나. 아침엔 아침이기에 일을 하기 싫고, 점심엔 식곤증이 몰려오기에 일을 하기 싫고, 저녁엔 퇴근이 얼마 남지 않아 일을 하기 싫기 마련이지만 유독 저녁 6시부터 7시까지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일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친구와 카톡하기! 적당히 눈치를 보며 키보드 소리를 죽여가면서(나름대로)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사실 퇴근을 하고 함께 작업을 하기로 한 날인데, 친구가 요일을 착각해서 수업을 마치는대로 학교 동아리 발대식을 보러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수업은 7시 반에 끝이 나고, 동아리 발대식은 10시까지라는 카톡을 보자마자 나는 작업이고 나발이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카톡을 보냈다. 


"나도 나도 갈래요!"


밤에 학교에서 열리는 동아리 발대식이라니! 게다가 봄 밤이라니! 거기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있다니! 상상만 해도 더 이상 설레일 수 없을 만큼 설레이고, 신났다. 시간은 왜이리도 안가는지, 양쪽 다리를 번갈아가면서 떨다가 7시가 되자마자 가방을 들춰매고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졸업생이 되어 방문하는 학교는 기분좋게 낯설었다. 불편하지 않은 낯설음을 느끼며 학교 중앙계단을 향해 올라가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중앙계단이 아닌 건물 뒷편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이었다. 알겠다고 하며 어두컴컴한 학교 건물 뒷편으로 향하면서도 이 길이 맞나, 싶었다. 의구심을 품고 더듬 더듬 걸어나가는데 침침한 가로등 아래에 사람 셋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앉아 있거나 몸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못 본 척 하고 갓길로 붙어서며 직진을 하자 누구는 달려와 음료수를 입에 넣어줬고, 누군가는 '어이 아가씨!' 하고 외쳤고, 누군가는 뒤에서 웃음과 피곤함을 함께 머금고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입에 물린 음료수에 소주가 섞여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한모금 삼킨 이후였다. 


 우리는 만나자 마자 발대식 공연을 하고 있다는 중앙계단 쪽으로 갔다. 하지만 중앙계단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더이상 오지 못 하게 펜스를 쳐 두기까지 한 것이다. 우리는 재학생 몇명이나 된다고 야박하게 펜스까지 쳐두냐며 투덜대면서 적당히 보일 만한 장소를 찾아서 해맸다.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서 대충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했고, 학과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공연을 보고 있기도 했다. 이 좋은 봄 밤에 퍼지는 음악소리, 조명, 그리고 곳곳에 퍼져있는 대학생들이라니! 보면 볼 수록 코로나가 종식된 시절로 돌아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낭만적이고.. 좋은데.. 너무 낭만적이어서 이게 뭐지 싶은. 분위기와는 별개로 나의 친구들은 꽤 지쳐있었고,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는 우리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뒤돌아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무대의 조명과 음악소리와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표정과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소에서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잠에 가득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벚꽃공원 갈래요"


그 표정과 말투가 영락없는 어린 아이의 것인지라, 우리는 한바탕 웃고는 벚꽃 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그 곳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믿지 않았다. 지금은 4월 중순이며, 바로 어제까지 비가 내렸기에 벚꽃은 이미 다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어 함께 벚꽃 동산으로 향했다. 



 정말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꿈 속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공원에는 벚꽃이 만개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만개한 크고 긴 벚꽃나무들이 늘어진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벚꽃나무들로 둘러쌓인 공터가 나타났다. 넓찍한 흙바닥은 전 날 비가 온 것이 거짓이 아님을 말해주듯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런 것 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누군가는 뛰어다니고, 또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 나는 멍하게 벚꽃을 바라봤다. 너무 예쁘다 라는 말을 연신 남발해가며 바라보다가 같은 각도 같은 벚꽃나무임을 알면서도 또 휴대폰을 꺼내어 찰칵. 그러다가 고개를 내려서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바라보면 벚꽃나무와 그들을 꼭 한 프레임에 담고 싶어서 찰칵. 또 그러다가 아에 드러누워서 축축한 바닥을 느끼며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벚꽃만 바라보다가 잠깐 고개를 들어보면 늘어진 벚꽃아래에서 홀로 알 수 없는 춤을 추는 친구의 모습이 그보다 잘 어우러질 수 없을 것 같아 또 찰칵.


 


 나 올해 벚꽃 못 볼줄 알았는데! 와 나 올해 벚꽃 볼 줄 몰랐는데! 와 나도 벚꽃 봤다! 같은 의미를 담은 말을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만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내뱉었다. 새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벚꽃에 진심이었나 싶었다. 너무 식상해서 부끄럽지만... 노래 가사에서 종종 나오는 '깨고 싶지 않은 꿈'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름답고, 즐겁고, 고요하고, 행복하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이 곳. 나를 애정하고,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웃고, 떠드는 이 곳에서의 시간이 기억속에서나마 영원할 수 있길.


 각자의 방식으로 벚꽃을 즐기던 친구들은 어느 순간 모여 앉아 또 사진을 몇 번 찍었고, 내가 근무중 일때 친구들이 논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좀 보고, 또 그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누군가는 춤을 추고,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봄 밤의 드라이브라... 아무래도 친구를 잘 사귄게 틀림없다. 아유 똑똑해!


 다들 피곤에 절어있으면서도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여보기 위해 차를 빌릴 수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가 퇴근해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도 친구들은 아주 피곤해보였지만... 하품을 삼키면서도 차를 향해 걸어가는 길 내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래, 피로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벚꽃 파워로 어찌 어찌 잠깐 잊을 수 있다 쳐도, 허기짐은 도무지 잊혀지지도, 숨겨지지도 않는 것이다. 친구들이 주차장에서 차를 찾고 잠금을 해제하는 동안 편의점에 가서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전주비빔 삼각김밥 두 개를 샀다. 제일 맛있는 맛 두개를 다 살 수 있다니, 정말 운수 좋은 날이군 하고 생각하면서. 나와서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입에 밀어넣는데 어쩜 그렇게 맛있던지. 봄 밤에 먹는 삼각깁밥이 맛이 없을 리가 없지.

그래, 나 봄 밤 좋아한다. 어쩔래!(갑자기? 그치만 봄 밤 매직이라는게 있다고. 괜히 사람들이 봄에 연애를 가장 많이 시작하는게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분위기가 생가는게 봄 밤이고 그건 삼각김밥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전주비빔은 주머니에 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드라이브를 하며 학교에서 집이 먼 친구의 집에 데려다주고, 또 어디로 갈 지 몰라 아무 곳이나 가다가 아차 이러다가는 수원으로 빠질 수 있겠다 싶어 다시 차를 돌렸다. 예전에는 '드라이브'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운전은 장소와 장소를 이동하는게 전부였기에.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의 벚꽃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 살아있길 잘 했다"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살아있기를 정말 정말 잘했다. 그런 말을 추임새처럼 터뜨리는 나의 옆에서 친구는 내가 벚꽃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게 운전 속도를 늦추며 102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에 겨워 못 견디겠는 순간이 오면 나는 이제 그만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행복해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마지막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내가 이 친구들과 함께 벚꽃을 구경하는 순간만큼은 현재에 충실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충만함이 현재에 충실함으로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현재에 머물게 하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다. 그러니, 운동을 해야겠다. 체력을 키우고 건강해져서 오래 살아야지. 오래 오래 살아남아, 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내가 다 알아내야지. 존버는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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