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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봄 Jan 03. 2024

개근상이 주는 의미

나는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다

예전에 내가 국민학교 1학년에 다니던 때의 이야기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열이 펄펄 끓었고, 나의 눈동자가 흐릿하니 큰일이라도 치를 것 같아서 담임 선생님께서 일하시는 엄마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하셨다. 



학교에서 전화까지 왔으니 허둥지둥 달려오셨을 엄마의 모습이 안 봐도 훤했다. 어린 나이지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  "엄마, 가게는 어떻게 하고 왔어?"였다. 엄마의 눈에도 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셨는지 약국 조제약으로 어림도 없다는 걸 아셨는지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급하게 링거도 맞고 조치를 취하고 약을 먹은 후에야 상태가 진정되었다. 그 후에 엄마의 행동에 나는 어린 나이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나의 손을 잡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내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엄마에게 지금 왜 학교를 가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단호하게 "아직 학교 수업이 끝나지 않았으니깐 가서 끝내고 오자."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아픈데 괜스레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목놓아 울며 엄마 손에 이끌려 담임선생님 앞에 갔더니 선생님이 당황하셔서 나의 상태가 너무 나쁜 것 같으니 오늘은 그냥 가시라고 했다. 



끝까지 수업 끝내고 보내달라는 엄마를 바라보며 속으로 '분명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때 그 상황이 생생한 걸 보면 상당히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은 지금 가더라도 조퇴처리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서야 엄마는 나를 이끌고 집으로 데려가셨다. 개근상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해서 16년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해본 적이 없다. 



알게 모르게 무슨 일이 있어도 결석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 몸에 밴 것 같았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크다. 요즘 코로나 이후에 감기를 달고 사는 학생들을 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프지 않더라도 체험학습이라고 하면 결석처리도 안된단다. 



1년에 20번 정도 빠져도 결석처리가 되지 않다 보니 학교도 빠지는 판국에 공부방이 뭐라고 출석을 강요할 수 없는 분위기다. 개근상이 얼마나 위대한 상인지 이제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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