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푸치 Mar 29. 2024

이제 핑곗거리가 사라졌다.

그 자리엔 노력이란 아이가 자리 잡았다.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핑계는 바로 ‘안 보여서’였다.


“글씨가 안 보여서 공부를 못해요.”

“안 보여서 못해요.”


왜냐하면 나보다 더 몸이 불편하고 시력이 좋지 않아도 여러모로 좋지 못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씩씩하고 밝게 또 유쾌하고 단단하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지금은 내가 다녔던 시각장애 특수학교 고등과정에서 ‘이료’라고 하는 교과를 배우지 않고 일반 학교와 동일한 교과목을 가르치는 인문과정으로 바뀌었지만 내가 학교를 다녔을 당시에는 국, 영, 수, 사, 과 등과 같은 일반교과목은 물론이고 이료라고 해서 안마사가 될 수 있는 직업 교과의 영역도 배웠다. 이료 교과에는 해부생리, 한방, 침구, 보건, 병리, 진단, 전기치료, 안마 · 마사지 · 지압, 이료임상 등과 같은 이론교과와 안마와 침을 실습할 수 있는 실기 교과로 운영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익히고 배우면 국가공인자격증인 안마사자격증이 부여되어 안마사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되었다. 현재 내가 다녔던 특수학교 고등과정에서의 이료교과는 없어졌지만 성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이료재활전공과정의 교육 과정에는 이료 교과가 배정되어 있다.


이료 교과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안마사자격증이 있어야만 이료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었기에 이료 교과목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셨다.




고1 때는 일반 교과목의 비중이 더 많아 이론 이료 교과로는 해부생리만 배웠다. 그런데 해부생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맹에 해당하는 시각장애인이셨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도 처음 만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선생님이란 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껏 만났던 선생님들은 모두 다 비장애인선생님들이었으니까.. 해부생리선생님은 연세가 좀 많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첫 수업 때 한 손엔 커다란 점자책을 들고 들어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말투도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했던 선생님. 피부가 유난히 곱고 반짝반짝했던 선생님. 해부생리라는 과목답게 신체의 수많은 명칭을 알려주셨던 선생님. 때론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해당 부위와 명칭을 알려주셨던 선생님. 그때는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셨었지만 과거 교감선생님까지 했던 선생님이셨다.




컴퓨터 시간이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컴퓨터 화면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구조가 아니라 책상 아래 깊숙한 공간에 컴퓨터 화면이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 화면은 책상 유리로 막혀있었기에 시력이 좋지 않아 컴퓨터를 볼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책상 유리를 걷어내고 반쯤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고개를 처박고 컴퓨터 화면을 봐야 했다. 그 자세를 계속 유지하다 보면 책상 면에 가슴팍이 계속 닿아 피부가 찢겨 피가 났었다. 다행히 특수학교 컴퓨터실은 컴퓨터가 책상 아래 놓여있지 않았고 마음껏 모니터를 눈에 바짝 가까이 당겨 봐도, 글씨를 크게 확대해 봐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아 좋았다. 심지어 눈으로 화면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소리로 컴퓨터의 화면을 읽어주는 소프트웨어도 있었다. 몇몇 맹학생은 이를 활용하여 나보다 더 컴퓨터를 능숙하게 잘 다뤘다. 그런데 또 충격적이었던 건 컴퓨터 선생님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컴퓨터 선생님은 성인이라 하기에 현저하게 키가 작으셨다. 정확한 키는 잘 모르겠으나 성인 남성의 평균 키에도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는 150 미만으로 보였다. 사연을 듣고 보니 선생님은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뼈의 성장이 멈춰 지체장애인이 되셨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인해 주눅이 들었을 법도 한데 선생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주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셨다.




수학시간이 되었다. 장애가 있기에  모든 영역에 있어 조금은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중 유독 더 특별한 요구가 필요한 과목이 바로 수학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수학선생님도 일반 교과를 담당하고 계시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셨다. 선생님은 확대경을 이용해 교과서를 보셨는데 수학을 선택한 이유가 눈으로 보는 글자가 적어서라고 하셨다. 약간 독특하고 사차원의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이셨는데 뭔가 과목을 선택한 이유가 딱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자신도 시각장애가 있기에 시각장애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수학에 접근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하시는 분이셨다. 특히 태어나 한 번도 세상을 보지 못한 선천맹의 경우 도형에 대한 감각이나 그래프 등과 같은 시각적인 정보를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우역곡절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원하는 위치에 자유자재로 글자를 적을 수 있는 일반 글자와는 달리 가로식으로 적는 점자를 사용하는 맹학생의 경우 세로 식으로 많이 행하는 계산법을 필기를 통해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계산을 암산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반 맹학생과 같이 수학보충을 할 때 나는 그들의 엄청나게 정확하고 빠른 암산실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마 그들은 수도 없는 노력과 연습을 했을 것이다.




특수학교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은 내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정말 나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보조공학기기를 만나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시각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과 방법, 그리고 환경이 제공되었으니까. 무엇보다 ‘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바뀌게 되었으니까. 이미 자퇴서와 함께 일반학교 때의 기록은 세탁이 되었지만 나는 일반학교 때의 오점을 만회라도 할 듯 특수학교에서의 3년은 정말 최선을 다해 성실히 다녔다.

이전 05화 어서 와, 시각장애인은 처음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