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셨을까?

묻지 못한 말, 듣지 못한 신호들

며칠 전, 시아버님께서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로 어지럼증이 심해져

큰아들인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남편은 놀라서 퇴근하자마자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곧장 아버님 댁으로 달려갔다.


무더위에 식사도 못 하신 채 탈진해 침대에 누워 계셨고,

어지러움이 심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이 부축해서 걸어보려 했지만

아버님은 도저히 못 걷겠다고 하셨고, 결국 구급차를 불렀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30일 오후 01_42_32.png


구급차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계신 아버님을 보며

남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기골이 장대하시고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셨던 아버지의 나이 듦이,

그 순간 확연히 느껴졌다고...

언제나 씩씩하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많이 작아 보이셨다고 했다.


요즘은 구급차를 탄다고 바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의 증상을 주변 병원에 먼저 전송하고,

해당 병원에 진료 가능한 의료진이 있어야만 내원 허가가 떨어진다.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인데, 그런 관문을 또 거쳐야 하다니...


다행히 한 병원의 응급의료과 교수님이

아버님의 증상을 봐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와, 겨우 내원이 가능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걸까...

자식이 걱정할까 봐, 바쁠까 봐, 힘들까 봐…

아파도 참고 또 참는다. 그리고 정말 도저히 안 되겠을 때에서야 전화를 건다.


그날 아버님의 상태를 보니,

며칠 아니 몇 주 전부터 이미 증상이 있었을 거라 짐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병원을 다니셨는데도,

누구 하나 그 상태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허탈했다.

약물 치료만으로도 조기에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아버님이 드시는 약은 너무 많았다.

우리가 아무리 “아버지, 약 그렇게 많이 드시면 안 돼요”라고 걱정해도,

아버님은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잖냐”는 말로 우리를 막으셨다.

그만큼 전문의가 가진 말의 무게와 신뢰는 컸다.


하지만 문득 드는 의문...

그 의사는 정말 환자 앞에서 정직하고, 환자에게 진심인 사람이었을까?

저 많은 약을 아버님의 위와 간이 정말 감당할 수 있었을까?

혹시 무심코 반복된 처방이 병을 더 키운 건 아니었을까?


자식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배려가, 때로는 이렇게 병을 키운다.

너무 늦게야 도움을 요청하게 되니까.

우리는 어떤가?

우리 세대는 부모처럼 자식에게 어떤 케어를 기대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몸도 마음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오늘 또 다짐한다.

나이 들수록 더 단단해지자.

의지할 자식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돈과 공간, 마음을 준비하자.


씁쓸한 하루의 끝에서,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부모에게, 그냥 존재만으로 기쁜 딸이었을까? 의지하고 싶은 편한 자식이었을까?

그 물음 앞에 한참을 멈춰 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의 초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