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못한 말, 듣지 못한 신호들
며칠 전, 시아버님께서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로 어지럼증이 심해져
큰아들인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남편은 놀라서 퇴근하자마자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곧장 아버님 댁으로 달려갔다.
무더위에 식사도 못 하신 채 탈진해 침대에 누워 계셨고,
어지러움이 심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이 부축해서 걸어보려 했지만
아버님은 도저히 못 걷겠다고 하셨고, 결국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계신 아버님을 보며
남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기골이 장대하시고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셨던 아버지의 나이 듦이,
그 순간 확연히 느껴졌다고...
언제나 씩씩하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많이 작아 보이셨다고 했다.
요즘은 구급차를 탄다고 바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의 증상을 주변 병원에 먼저 전송하고,
해당 병원에 진료 가능한 의료진이 있어야만 내원 허가가 떨어진다.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인데, 그런 관문을 또 거쳐야 하다니...
다행히 한 병원의 응급의료과 교수님이
아버님의 증상을 봐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와, 겨우 내원이 가능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걸까...
자식이 걱정할까 봐, 바쁠까 봐, 힘들까 봐…
아파도 참고 또 참는다. 그리고 정말 도저히 안 되겠을 때에서야 전화를 건다.
그날 아버님의 상태를 보니,
며칠 아니 몇 주 전부터 이미 증상이 있었을 거라 짐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병원을 다니셨는데도,
누구 하나 그 상태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허탈했다.
약물 치료만으로도 조기에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아버님이 드시는 약은 너무 많았다.
우리가 아무리 “아버지, 약 그렇게 많이 드시면 안 돼요”라고 걱정해도,
아버님은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잖냐”는 말로 우리를 막으셨다.
그만큼 전문의가 가진 말의 무게와 신뢰는 컸다.
하지만 문득 드는 의문...
그 의사는 정말 환자 앞에서 정직하고, 환자에게 진심인 사람이었을까?
저 많은 약을 아버님의 위와 간이 정말 감당할 수 있었을까?
혹시 무심코 반복된 처방이 병을 더 키운 건 아니었을까?
자식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배려가, 때로는 이렇게 병을 키운다.
너무 늦게야 도움을 요청하게 되니까.
우리는 어떤가?
우리 세대는 부모처럼 자식에게 어떤 케어를 기대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몸도 마음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오늘 또 다짐한다.
나이 들수록 더 단단해지자.
의지할 자식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돈과 공간, 마음을 준비하자.
씁쓸한 하루의 끝에서,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부모에게, 그냥 존재만으로 기쁜 딸이었을까? 의지하고 싶은 편한 자식이었을까?
그 물음 앞에 한참을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