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칼퇴 안 하는 남편
상위 1%로 탄생한 아이는 내가 1주일간 1인실에 입원하는 동안 신생아실에 있었다.
통증이 심했던 나는 아이를 바로 안아줄 수 없었고, 그러는 동안 아이는
속된 말로 신생아실에서 '손을 탄 아이'가 되고 있었다.
너무 우렁차게 울어서 안아주지 않으면 그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라도 딸은 선생님들의 손을 오가며 공주 대접을 받아왔다.
모유수유를 가르쳐주러 방문한 담당 간호사선생님 왈 "엄마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분유 먹이세요. 따님이 너무 우렁차게 울어서
침대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내내 돌아가면서 안아주고 있어요.
먹는 양도 많으니 괜히 무리하지 말구요. 내가 보기엔 엄마는 무리에요."
듣는 내내 기가 막혔다. 아니... 신생아실에서 그렇게 안아주면
나는 집에 가서 어쩌라는 건지...
좁은 자궁에서의 스트레스를 나온 후에 바로 안아주지 않으면 버티지 않겠다였는지...
아이는 평균 아가들의 키보다 4cm 이상 차이가 났고, 제 날짜를 지나고 나온 아이보다 더 컸다.
퇴원 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산후 조리원이 불편했던
나는 집으로 산후 조리를 도와주실 이모님을 요청했다.
아이는 잠을 자지 않고 나를 힘들게 했는데...
이때부터 나의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100일의 기적따위는 없었다... 그저 울고 안아달라 떼쓰는 아이만 있을 뿐...
남편은 매일 늦게 퇴근했다. 꼭 필요할 신생아 시기에 칼퇴를 했어야지!!!
안그래도 출산에서 쌓인게 많았던 나는 남편이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면
아이를 넘겨주고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꼬박 2-3시간을 아이를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잠을 제대로 안자고 아빠랑 노는 시간이었다.
몇 주를 하던 나는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어서 친정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부모님은 아이와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 길로 친정에 가서 몇 달을 엄마와 함께 키웠다.
아랫층엔 외할머니가 사셨는데... 오랜만에 갓난아이를 보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우리 딸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 사람이 나의 외할머니였다.
아이를 보기 위에 하루에도 수십번을 오르내리셨다. 할머니의 환한 얼굴을 가장 많이 마주했던 시기였다.
이유식을 시작하자 할머니께서 손수 키운 콩,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들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 시절, 그 공간, 그 따스함이 아직도 그립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득 받았던 시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