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상사 이야기 5

첫 회식에서의 긴장감과 따뜻한 여운

보험회사는 마감 후 회식을 진행한다.

내가 입사하고 2주도 채 안되어 첫 회식이 있었다. 영업 실적을 확인한 후 지점장을 대상으로 '상사의 전언'이 이메일로 발송된 뒤에야 식당으로 갈 수 있었다.

그날따라 간식도 못 먹고 배가 고파서 더 힘들었다. 윗분이 써주신 내용을 빠르게 타이핑해 확인받고, 이메일을 보낸 후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식당에 가보니 빈자리가 부사장님과 내가 마주 보는 자리였다.

하루 종일 상사와 붙어 일하는데,

식사 자리만큼은 편하게 배려해주길 기대했는데 말이다.

우리 부서는 인원이 제법 많았는데 이미 여직원들은 모두 뒷자리로 이동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날 메뉴는 갈비였는데 나는 배가 너무 고파 체면을 차릴 겨를도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갑자기 부사장님의 얼굴이 순간 모자이크 처리된 듯, 눈앞에는 고기만 보였다.


정신없이 먹는 내 모습을 보시던 부사장님이 갑자기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으시며,

"난 이제 배가 부르니 천천히 먹어."라고 하셨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 내가 체면도 잊고 너무 허겁지겁 먹었구나’ 하는 자각이 찾아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여직원들이 내 자리를 이렇게 비워두곤

고기를 많이 못 먹을 거라 걱정했단다. 물론 진심어린 걱정이라기보단 우스갯소리였지만,

막상 내가 먹는 속도를 보고는 모두가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묘한 씁쓸함도 남았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부사장님의 격려 말씀과 함께 건배 제의가 있었다.

그때 부사장님이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우리 비서는 술을 못하니 권하지 말고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기 바랍니다!"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였다. 술을 못한다는 이유로 혹시라도 눈치를 보거나 불편해할까 염려해 주신 것이었다. 그 작은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부사장님은 사실 술을 못하는 내가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술에 취해 통제가 안 되는 직원보다,

술이 없어도 깔끔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 훨씬 믿음직스럽다는 말씀과 함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날의 울컥함이 다시 밀려왔다.

그 일은 이후 회사 생활 속에서 나를 지탱해줄 힘이 되었다.


그 후로도 부사장님은 늘 세심하게 배려해주셨다.

영전하시면서 부서를 함께 옮긴 후에도, 타부서 회식에 같이 참석할 때면 식사가 끝나자마자

"너는 술도 안 마시는데 여기 있으면 힘들다.

일찍 들어가라."며 먼저 보내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순히 배려받는 것이 아니라,

‘존중받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좋은 상사와 함께한다는 건 단순히 일을 잘 배우는 것 이상이었다.

내 마음을 지켜주고,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따뜻한 여운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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