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주일 아침, 공항이 코앞이라 그런지 일어나지 못하는 딸을 그냥 두었다.
“11시 30분 출발이니까 9시 30분쯤 깨우면 되겠지” 했지만,
예상대로 10시 10분쯤 되어 호텔에서 나갔다.
체크인, 수하물, 보안검색까지 정신없이 지나고 면세점에 도착하니
도쿄바나나와 로이스 앞엔 대기줄이 생각보다 길었다.
비행기 표를 보여달래서 직원에게 보여주니 구매가 불가능하단다.
시간이 촉박해 바로 포기하고 게이트 근처에서 다른 초콜릿을 골랐다.
남편의 일을 도와준 직원들에게 줄 선물도 사고,
딸이 먹고 싶다던 말차 쿠키도 샀다.
나는 두 개 겨우 맛봤는데… 이미 사라진 건 역시나!!!
딸기 초콜릿과 녹차 초콜릿까지 챙겨 게이트로 향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만석. 일본을 드나드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다시 느꼈다.
기내식은 손대지 않았다.
기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원래도 별로 즐기지 않는 기내식을 더 멀리하게 된다.
승무원에게 바쁨을 얹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서 물만 한두 번 받는 편이다.
딸은 반대로 야무지게 먹고는 편하게 잠들었다.
김포공항에서 짐을 찾느라 또 한참을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행에서 쌓인 빨래와 청소가 나를 현실로 불러세웠다.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짐을 다 꺼내서 빨래를 색깔별로 분류하고,
제자리에 가져다놓고 하다보니 아… 정말 다시 일상 속으로 착지했구나 싶었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반찬 두 개를 만들고 치킨을 시켜 치밥으로 마무리했다.
일상은 이렇게 성큼 되돌아왔다.
어제까진 낯선 도시를 걷고 있었는데 오늘은 청소기와 세탁기 앞이라니.
사람은 참 빨리 적응한다.
딸은 "엄마 다음번엔 둘이 갈까?"라며 즐거웠던 기억을 곱씹었지만,
나는 문득 여행 패턴이 다르다는 건 꽤 큰 에너지 소모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대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남편도 본인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용히 걷고, 잠시 멈추며,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 간절하다.
아이가 빠르게 어른이 되어 내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을 날,
그때는 나도 나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여행을 다녀오면 늘 생각한다.
우리가 떠나는 이유는 ‘새로운 곳’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누군가와 맞춰가는 여행,
서로 다른 속도로 걸어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돌아와 마주한 일상.
오늘의 나는 어떤 속도로 살고 싶은지, 이 여행이 살짝 보여준 방향을
잠시 마음에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