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너는, 원래 그런 아이였다.
딸아이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유난히 빠르게 알아채는 관찰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 마음을 말로 건넬 줄 아는, 따뜻한 공감의 언어를 가진 아이였다.
3–4살쯤 되었을까.
회사를 다녀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던 딸아이는
엄마에게 줄 생일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아이를 봐주시던 이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신 뒤,
밥을 먹고 난 나는 조용히 아이 옆에 앉았다.
“이게 뭐야?” 내가 묻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줄 생일 케이크야.”
“우와, 엄청 잘 만들었다.
어쩜 이렇게 알록달록하게 만들었어?”
아이의 얼굴에 금세 뿌듯함이 번졌다.
“엄마 맛있게 먹으라고 내가 특별히 만들었어.”
아이는 또래의 여자아이들보다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뒤로 움직이다가
그만, 생일 케이크로 만든 블록을 툭 치고 말았다.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블록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속상해도 충분했을 텐데.
“OO야, 엄마가 미안해.”
내가 먼저 사과하자 아이는 잠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어떻게 이 작은 아이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었을까.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오늘 문득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건네지 못했다.
마지못해 던진 적은 몇 번 있었을지 몰라도,
아이처럼 진심을 담아 말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어른이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어른답지 못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조용히 반성해본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진심으로 건네보고 싶다.
너로 인해 행복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지금의 시간도 흘려보내지 않고 잘 살아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예전에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는 남편과의 너무 즐거웠던 연애 시절이 있어서
그 추억을 꺼내보며 지금을 견딘다고...
자식도 그런 게 아닐까.
“자식은 어릴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었구나 싶다.
나는 이미 딸아이에게서
평생 받을 효도를 다 받은 사람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조금 더 부드럽게 바라보고,
조금 더 자주 기다려주면서
나 역시 함께 성장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기다려주는 연습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