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이 말을 나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한 번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내가 그 말을 잘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
독문과 전공 수업과 심리학 전공 수업을 함께 들으며 논문까지 병행했다.
지도교수님께서 4학년에는 안식년으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신다고 하셔서였다.
2학년 2학기, 심리조사연구법 수업을 신청했을 때
논문을 쓰는 선배들 위주의 수업이라며
나는 해당 사항이 없으니 수강 변경을 하라는 말을
교수님께서 하셨단다.
그런데 변경 기간에 그 수업을 가지 못했고,
아는 선배도 없던 나는
변경 기간이 끝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듣기로 했다.
수업은 버거웠지만
덕분에 3학년 한 해 동안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역시 모든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
원어민 교수님의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독일어보다 영어가 먼저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독문과 친구들과 스터디를 할 정도로 노력했다.
장학금도 놓칠 수 없었고
학점 관리도 필요했다.
논문 주제는 두 번이나 수정했다. 꽤 두껍게 논문 참고 서적을 프린트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 꼼꼼하셨던 지도 교수님의 사전에 대충이란 단어는 없었다. 끝까지 빨간펜 선생님으로 잘 이끌어주셨다.^^
3학년의 나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해보겠다고
발을 동동거리며 난리를 피우던 사람이었다.
나보다 독일어를 잘하는 전공자들을 따라잡겠다고
스터디를 하며 질문을 쏟아냈고 몇 명에게는
질문 좀 그만하라는 뒷말도 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법을 모른 채, 그저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결국 1년 안에 논문을 완성했고
장학금도 받았으며
4학년 1학기, 원하던 독일 대학원에도 합격했다.
물론, 유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그때 내가 배운 건
바쁠수록 시간 관리를 잘하게 되고
생각보다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나를 세워보지는 못했다.
‘그 정도면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
그 말을 나는 듣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8월말부터 바쁘기 시작했던 일은
연말을 넘어 연초까지 이어졌고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며 프로젝트는 버거웠고 힘들었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보다, 결과가 먼저 무서웠다.
친한 동료는 괜찮다고, 이만큼도 충분하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줬음에도
마음 한편은 계속 불편했고
괜찮다는 말 대신, 이유부터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이 말을 아이에게 건넬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아니,
완벽해서가 아니라
부족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언젠가 아이가
최선을 다하고도 불안해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너는 이미 잘해왔어.”
그리고 그 말만큼은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꼭 안아주며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보다 먼저 내 마음을 다독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