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May 15. 2016

스승, 멘토, 파트너.

조경사님 이야기

작년 9월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첫 출근을 했다.

신임순경은 저마다 멘토를 지정받는다. 나의 멘토는 경력 16년의 베테랑 조부장님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약간 무서운 인상의 듬직한 체격으로 말을 붙이기 어려운 외모에 기가 죽었다.

내가 앞으로 가르침을 받을 선배님 치고는 약간 허름해 보이고....


아! 딱 곡성에 나오는 곽도원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계급도 같다.


처음 순찰차를 단 둘이 타던 그 어색한 시간에 고맙게도 먼저 말을 걸어 주셨다.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 학교는 어디에 나왔는지. 그런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내 생애 첫 신고가 떨어졌다.

도박 신고였다. 어떤 건물 지하에서 도박을 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너무 긴장해서 땀이 났다. 게다가 지하라면 무전이 안 터지는 곳이었다. 몇 명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지하에 둘만 들어가야 한다. 내 허리에 있던 가스총은 한없이 약해 보였다.


"야, 세게 해"

"네?"


조부장님은 나에 되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지하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뭘 세게 하라는 건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처음에 문을 열어주지 않더니 안에서 어수선하게 뭘 치우는 소리가 나고 이내 누군가 빼꼼 문을 열어 주었다. 40~60대 남성 15명이 기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처음 출근한 순경도 느낄 수 있는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 명은 소파에서 자고 있고 몇몇은 바둑을 두고 있는데 하나같이 바둑판에 돌이 몇 개 올려져 있지 않았다. 같이 도박을 하던 사람이 돈을 잃고 신고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어도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모두 가만히 계시라고 소리쳤다. 조부장님이 한 명씩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길래 나도 따라서 했다. 그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너 되게 듬직하다?"

"감사합니다!"


그곳을 빠져나와서 다시 순찰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세게 한다'의 의미를 배웠다.

경찰관은 강하게 나갈 때와 약하게 나갈 때를 알아야 한다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기원은 상습도박 신고가 들어오는 곳으로 경제팀에서 수사를 준비 중인 곳이라고 한다. 지구대 요원이 제복 입고 검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강력하게 계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한다.


다음 타임에 둘이서 도보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새벽에 한적한 동네를 둘이 걷다 보면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리게 된다. 긴장을 하고 있던 나를 보고 여러 가지 농담도 해주셔서 나도 여러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으신 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새벽 2시.

 한적한 공원에 흑인이 백팩을 메고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불심검문해봐"

"네?... 네!"

책에서만 보던 불심검문을 실제로 처음 해보는 순간이었다.

그 흑인은 체류기간이 지나있었다. 내가 차고 있던 묵주를 보자 I'm Christian을 연신 말하며 나를 붙잡았다. 마음이 아팠다. 조금 머뭇거리고 있을 때 조부장님은 순찰차를 불러서 태우고 출입국관리소로 보냈다.


"법 집행하는 사람이 그렇게 물러서 어쩌냐"

"죄송합니다."


그렇게 도보순찰이 끝나고 파출소에 들어서면서 조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파출소에 아주 인재가 들어왔어요 팀장님~ 저놈이 아주 영어를 잘하더라고"

그렇게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그 이후로도 5개월 동안 조부장님과 나는 파트너가 되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많이 처리했다. 처음 변사체를 본 날도 조부장님과 함께 했고, 주취자에게 이유 없이 욕을 들었을 때에도 부장님과 함께였다. 아무리 험한 현장에 가도 조부장님과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조부장님도 나와 같이 나가면 든든하다고 하셨다. 한산한 새벽 3시쯤 편의점에 들러서 먹는 초코 에몽은 꿀맛이었다.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때 가장 아쉬워해주셨던 분도 조부장님 이었다. 좋은 추억이 너무 많은 분이라서 헤어지기 싫었다. 앞으로 경찰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주신 덕분에 처음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전화를 드렸더니 반갑게 맞아 주셨다. 지금은 주취자보호센터에 계신다면서 만취해서 오면 수액을 직접 놔주신다고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에 내 제자에게 사명감을 듬뿍 담은 스승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그때는 내가 신임순경에게 '야, 세게 해'라고 말해야겠다. 굉장히 멋있어 보였거든.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