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비가 왔다.
며칠째 이어지는 장마로 습도와 불쾌지수가 최고였다.
비가 오는 날은 신고가 적은 편이다.
'오늘도 무사히...'를 속으로 외치며 근무를 하는데
새벽 3시가 다돼서 신고가 들어왔다.
'어떤 여자가 갑자기 집에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집주인인 할아버지는 나와있고
집안에 여자 샌들만 보였다.
방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들어왔다는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샌들만 벗어놓고 맨발로 간 것 같다며 돌아서려는 찰나에
옷장이 보였다.
"할아버지, 여기 옷장에 사람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는 옷이 많아서 못 들어갈 텐데..."
옷장을 여는 순간!!
어느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진짜로 곡성의 한장면 같은 소름이 돋았다.
30대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몇 달 전 파출소에서 엄청난 진상을 시전 했던 인물이었다.
말로 달래고 화를 내봐도 나올 생각을 안 해서 일단 끌어내렸다.
삶이 힘들다며 소리 지르고 울부짖는 그 여자를 보며
피해자인 할아버지는 되려
"안 좋은 일 있는가 보네... 집에다가 좀 모셔다 드릴 수 있나요?"
라고 말했다.
누가 내 어깨만 스쳐도 싸움이 나고
합의금을 받으려 안달이 나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그 여자를 걱정해줬다.
2평 정도 될법한 집에 혼자 사는 그 할아버지는
그 여자를 걱정해줬다.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괜한 시비를 걸 때
'안 좋은 일 있는가 보네... 허허'
하며 넘길 수 있을까?
나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