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8월의 어느 날 - D400 도로(누사이빈 ~ 올타코이)
- 터키~시리아 국경이 보인다. 내가 달리고 있는 E90 도로에서 여전히 1k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저건 국경이 확실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끝없이 이어진 저 두껍고 흉측한 시멘트벽은 국경 방벽이 아니고서야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 삭막한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는데 마틴이 다가와서 말했다.
“조심해서 사진을 찍는 게 좋을 거야. 잘못하면 총을 맞을 수도 있어.”
“에이. 사진 좀 찍는다고 설마 총을 맞겠어?”
“농담이 아니야. 저기를 한 번 봐봐."
마틴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우뚝 솟은 산마루에 감시초소가 서있었다. 그곳에는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 양손에 자동소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다. 서로 간의 거리 때문에 군인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행여나 허튼짓을 했다가는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지도 모를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난 방벽이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황량한 곳에 새하얗고 아무런 특색이 없는 인공구조물이 있으니 풍경이 더욱 메말라 보인다.
터키~시리아 국경(방벽)은 만리장성과 미국~멕시코 국경(방벽)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국경 방벽이다. 총길이 764km 달하는 방벽은 밀수를 방지하고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불법 난민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굳이 이만한 방벽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터키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조치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터키는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2018년 기준) 터키에 거주하는 난민의 수는 약 400만 명이고 그중에 370만 명이 시리아 난민이다. 터키의 인구가 약 8,000만 명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이건 정말로 엄청난 수이다.
터키가 이렇게 천문학적인 숫자의 난민을 수용한 데에는 분명 인도적인 요인도 있지만 정치/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터키는 2016년 유럽연합(EU)과 난민 협정을 체결하고 난민의 유럽행을 차단하는 대신 EU로부터 총 60억 유로의 지원금을 받고 자국민의 유럽연합 무비자 입국을 허락받았다. 이는 단순히 의도만을 놓고 보자면 터키가 70년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과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한국 전쟁에 참가한 것과 유사하다. 국가가 처리하는 일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익이 없으면 어떠한 결의도 없다. 순수한 선의와 도덕은 오직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사이빈에서 D400 도로를 따라 마르딘을 향해 가는 길. 숨이 턱 막힐 거 같은 날씨였다. 핸드폰을 보자 기온에 41도라고 찍혀 있다. 땡볕 아래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을 터. 정말 찜통이 따로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도로에는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덤프트럭이 지나다닌다. 지독한 열기와 매캐한 매연이 마치 소용돌이처럼 내 주위를 맴돌며 나를 괴롭힌다. 입안은 가뭄으로 갈라진 땅처럼 바짝 메말랐다. 물을 마셔보지만 불과 15분 전에 주유소의 정수기에서 받은 차가운 물은 벌써 뜨겁다. 탈수증으로 쓰러지기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마셔야 한다.
한 시간 좀 넘게 자전거를 탔을까? 난생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쓰러지기 직전, 우리는 어느 주유소를 발견했다. 나는 주유소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주유기 옆에 대자로 누워버린다.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상관 없었다. 자동차가 나를 짓밟고 갈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내 알 바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 우주의 섭리는 아주 간단해 보였다. 이대로 여기서 쉬거나 아니면 죽거나.
“왜 하필 자전거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공중에서 갑자기 음절 하나하나가 아주 또렷한 영어가 들려왔다. 이 한 마디는 강한 울림을 만들며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글쎄,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눈을 떠보니 한 남자가 서있었다.
쿠르드족인 이 남자는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다가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영어는 짧고 간결했지만 놀라울 만큼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언어를 피부를 통해서 배운 사람만이 그리고 자기 인생을 뚝심 있게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그의 말속에서 느껴졌다.
그는 우리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사 주었다. 시원한 단물이 목구멍을 통해 폭포수처럼 몸 안으로 들이쳤고 나는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틴과 베로 그리고 나는 무려 6리터나 되는 음료를 그 자리에서 끝내버렸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남자와 헤어진 후,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좀처럼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물론 자잘한 이유까지 생각해본다면 몇 가지 열거해 볼 수는 있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니까, 자전거 여행은 돈이 별로 들지 않으니까, 자전거의 속도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모험다운 모험 그리고 도전다운 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 등.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근본적이고 가슴에 확 와닿지 않는다.
“베로, 너는 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거야?”
내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던 그녀는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오한 질문인 듯했다.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을, 더 나아가 인생 전체를 꿰뚫는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저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질문을 질문인 채로 놔두기로. 단, 답을 찾는 걸 포기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어떤 질문은 답보다 질문 자체가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답을 내리기보다는 답을 내리기 위한 여정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현재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날 저녁 무렵. 태양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마치 하늘에도 태양이라는 심장이 있어서 그 붉고 진한 혈액을 온 세상에 골고루 퍼트리는 거 같았다. 태양은 게양대의 국기가 내려가듯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따라서 서서히 떨어졌다. 그 풍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서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이 넘치는 존재일 게 분명하다. 우리로 하여금 이리도 멋진 광경을 보게 만들어 주시니 말이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풋살장 근처에서 야영 준비를 했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살짝 시선을 주더니 풋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틴에게 말했다.
“쟤들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려는 걸까? 설마 축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단둘이서? 설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둠 속을 헤치고 남자 두 명이 더 나타났다. 우리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농담을 좋아하는 마틴이 말했다.
“설마 오늘 밤 여기서 이 동네 챔피언스리그 결승이라도 열리는 건 아니겠지?”
“(그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이) 환한 조명이 켜지고 갑자기 온 동네 사람들이 몽땅 나타나는 거지. 그러고서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축구를 하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오밤중에 그런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이건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풋살장의 환한 조명이 모두 켜지더니 자동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속속 도착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그리고 열 대!? 심지어는 다인승 승합차까지 등장했고 그 안에서 열댓 명 가까운 사람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우리는 돌하르방처럼 멍하니 서서 이 급변하는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과연 축구에 미친 터키 사람들답게 한창 신이 난 그들은 우리 따위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풋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블랙홀처럼 고요하고 어두웠던 풋살장은 삽시간에 사람과 활기로 가득 찼다.
곧 올타코이(Ortakoy)의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이날만을 기다려온 동네 축구선수들은 황소라도 때려잡을 기세로 공을 동서남북으로 뻥뻥 찼고 공은 때때로 철조망에 부딪혀 쾅 하는 거친 소리를 내었다. 시간은 이미 밤 8시가 훌쩍 넘었다. 달빛이나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이 어둠 속을 헤치고 다른 야영 장소를 찾는 건 정말 오늘 하루의 그 지독한 더위를 다시 겪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우리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죽치고 앉아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 모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저녁을 대충 때운지라 배는 고팠고 몸은 끈적끈적하고 땀내가 진동했으며 고단함이 새끼발가락에서조차도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너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우리 여기서 하룻밤 야영하려고. 괜찮을까?”
“괜찮고 말고. 사실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긴 한데.”
“뭔데?”
“축구 끝나면 내 친구 집으로 가지 않을래? 하룻밤 재워 줄게.”
오! 이게 웬 횡재인가. 남자가 다가올 때만 해도 ‘쫓겨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넝쿨째 굴러들어 온 호박도 이보다 더 반갑지는 않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자의 제안에 생각지 못한 함정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얼마나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우리도 구태여 묻질 않았다. ‘공 좀 차다가 끝나겠지’라는 우리의 안일한 생각을 무참히 짓밟듯 축구 경기는 영영 계속되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바닥에 대충 매트리스를 깔고 쪽잠을 청했다. 주변의 소음이나 환한 조명도 무겁게 내려앉는 내 눈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무섭게 흔들었다. 마틴이었다.
“두호야. 일어나! 경기 끝났대.”
시간은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서 자전거에 올라타 남자의 자동차를 따라갔다. 풋살장을 벗어나자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의 짙은 어둠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먼발치에서 일렁이는 마을의 불빛이 보였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북극성처럼 빛나는 자동차의 후미등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올타코이는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도착한 곳에는 평범하게 생긴 이 층 주택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지난 후, 우리는 지시에 따라 신발을 벗고서는 카펫이 깔린 계단을 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 곳에서 맞닥뜨린 장면을 나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그곳에는 족히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문이라는 사각형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모두가 한 지붕 아래 사는 형제자매처럼 보였고 그들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중년의 여성도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심지어 작은 어린아이의 눈망울까지 별처럼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있었다. 다들 먼 곳에서 온 이색 손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선 우리는 곧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안내된 방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본 방 중에 가장 신비롭고 정갈한 방이었다. 작은 창문 하나 없는 방은 천장도 벽도 바닥도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새하얬다. 횡으로 길게 늘어진 방의 세 모서리에는 등받이와 방석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방을 장식하는 가구라고는 벽면 한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TV와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랍어가 적힌 액자뿐이었다.
방이 너무나도 깨끗하고 정갈해서인지 내 더러운 차림새가 신경이 쓰였다. 특히 내 양말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갈아 신었던 게 언제이지? 청국장 같은 구수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코를 간지럽히자 조금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문득 내 옆에 있던 베로의 양말에 시선이 갔다. 얼핏 봐도 안 갈아신은 지 나흘은 넘은 거 같은 처참한 몰골. 게다가 작은 구멍까지 나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부끄러움 따윈 보이지 않는다. 그래, 더러운 양말은 언제라도 씻으면 그만인 법.
얼마 지나지 않아, 안주인이 저녁 식사를 가지고 왔다. 소풍 갈 때 쓰일법한 큰 보자기가 바닥에 깔리고 그 위에 투박하게 생긴 은쟁반이 놓였다. 쟁반에는 닭고기 필라프와 튀긴 감자, 청포도 그리고 터키의 밥상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자른 토마토와 요구르트가 올려져 있었다.
내 고백하건대 이보다 맛있는 필라프는 이제껏 먹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먹을 거 같지 않다. 그건 정말 내 생애 최고의 필라프였다. 어렸을 때 피자의 토핑은 제거하고 빵만 먹을 정도로 편식이 심한 나였지만 김치볶음밥만큼은 아기 돼지처럼 맛있게 먹었다. 특히 누나가 해주던 김치볶음밥은 배고프던 시절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였다. 눈앞의 필라프는 조리법도 다르고 맛도 달랐지만 누나의 김치볶음밥을 떠올리게 했다. 너무 맛있어서 또 너무 그리워서 먹다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TV를 보거나 차를 홀짝대면서 서로 작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눌 뿐이었다. 안주인은 먼발치에 앉아서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안주인을 따라 들어온 아이들도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어미 품에 꼭 붙어서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여느 아이이고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피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애석하게도 안주인의 얼굴에는 매일 반복되는 가사의 피곤함이 묻어났다. 현재 그녀 옆에 똑 달라붙어 있는 아이만 거의 열댓 명이니 육아에 집안일에 피곤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겠지.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남편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심지어는 생기마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난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마치 부처님을 보는 듯한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다.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난 태양보다 따뜻하고 바다보다 넓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란 바로 이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침실로 안내되었다. 한데 이게 웬걸? 침실이라고 안내받은 곳은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도 벽도 없는, 허허벌판처럼 넓은 옥상이 아닌가? 입구에 달린 작은 백열전구의 희미한 불빛 아래, 옥상 한쪽에 있는 간이침대와 침구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손님을 들여놓고 밖에서 재운다고? 그 많은 모기는 어떻게 할 거고 행여 비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건데?’
주인장과 미리 얘기를 나눈 마틴은 나의 걱정을 눈치챈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은 화창할 거래. 사실 여름에 이 지역은 비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라고 하네. 그리고 모기들은 10시 이후에는 다 사라진대. 자면서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여름에는 아이들이 가끔 여기서 잔다네.”
나는 찬찬히 옥상을 둘러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 마을을 애처롭게 밝히는 가로등 너머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환한 불빛들의 집합소가 보였다. 마르딘이었다. 마르딘의 구시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황금처럼 반짝이며 잔잔하게 일렁였다. 내일이면 저곳에 올라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드넓은 평야를 바라본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어! 별똥별이다!”
갑자기 베로니카가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똥별을 마주했다. 밤하늘의 한쪽 끝에서 나타난 별똥별은 긴 꼬리를 만들어 내며 다른 한쪽 끝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멀리 날아가던지 혹시 지구 끝까지 뻗어나가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차.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최근에 매일 밤 별똥별을 하나둘씩 보고 있지만 소원을 빈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소원을 빌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미 내 소원 안에 있는걸.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그리고 내 존재가 이미 내 소원인걸.
마틴과 베로니카, 나는 요람처럼 생긴 간이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잠을 이루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틴과 베로니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열흘 째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함께 자전거도 타고 밥도 먹고 수영도 하고 이렇게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으니 이제 길 위에 가족이 된 거 같다. 주위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옥상에 설치된 발전기가 간헐적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우리는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