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Jul 13. 2022

사람은 타인에 의해 느낀 감정은 결코 잊지 않아

터키 8월의 어느 날 - 샨르우르파(Sanliurfa)



- 마르딘에서 눈부신 야경을 본 다음 날, 우리는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Ortakoy로 향했다. 이틀 전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무함마드가 우리에게 샨르우르파로 가는 트럭을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데 약속 시간인 오전 8시에 늦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왔건만 어째 무함마드의 집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는 우리에게 집과 마당을 구경시켜주고는 아랍 커피를 대접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지만 트럭 얘기는 일절 없다. 이쯤 되니 우리가 뭘 잘못 알고 있나,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참다못한 마틴이 먼저 입을 뗀다.


“무함마드. 혹시 트럭은 언제쯤 오는 거야?”
“걱정 마. 기다리면 알아서 올 거야.”


기다리면 알아서 온다고? 이게 무슨 꼬박꼬박 날라 오는 고지서도 아니고 그게 대체 언제인데? 나는 그를 째려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신선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아랍인들은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들의 시간을 창조해 나간다고 들은 적이 있다. 혹시 이게 그 실천 방법 중 하나인가? 약속시간을 정해놓고 그 약속시간에 연연하지 않기.


기다리다 지쳤는지 베로는 안주인의 배려로 작은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잔다. 마틴과 나는 거실에 남아 무함마드의 두 아이들에게 여행 사진을 보여주고, 화장실도 가고, 핸드폰을 백 번은 만지작거리고, 밖으로 나가서 마을 공동으로 쓴다는 탄두르(항아리 가마)도 구경해 보았지만 트럭은 올 생각이 없다. 그렇게 약속 시간으로부터 무려 네 시간이나 지나버렸다.


“자, 트럭이 왔다니까 한 번 가볼까?”


전화 한 통을 받은 무함마드가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나는 기쁨에 겨워 벌떡 일어났다. 애간장을 태웠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다. 안주인은 베로에게 예쁜 문양이 그려진 스카프를 작별 선물로 준다. 생각지도 못 한 선물에 베로는 감동을 받고 나는 그녀가 조금 부러워진다. 터키에서 여성들이 주고받는 건 저렇게 달콤한데 남성들이 주고받는 거라곤 오로지 담배와 타블라 주사위뿐이다.


우리는 트럭을 타기 위해 자전거로 15 정도 달려서 E90 간선도로로 나왔다. 며칠  지나왔던 이곳은 여전히 지옥을 방불케 했다. 40도에 육박하는 기온 속에 도로의 아스팔트가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마그마처럼 일렁이고 오고 가는 수많은 트럭은 검고 매캐한 매연을 쏟아냈다. 우리는 자전거를 화물칸에 싣고 트럭에 올라탔다. 무함마드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터키 사람들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고맙다.


트럭의 좁은 좌석에는 우리 셋을 포함하여 6명이나 타고 있다. 공간의 여유 따윈 없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끈적끈적한 서로의 팔다리가 교차하고 몽롱한 정신줄도 교차한다. 에어컨은 기대도 하지 말라. 60년대 자동차가 아니고서야 에어컨이 분명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틀지를 않는다. 터키에서 지금껏 더워서 에어컨을 트는 트럭 운전사는 듣도 보도 못했다. 대신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바람을 타고 휘몰아친다. 터키의 서정적이고 리듬감 넘치는 대중가요가 스피커가 터져라 흘러나온다. 운전사를 포함한 사람들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잡담을 떨어가며 담배를 피워댄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만큼이나 내 정신도 없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갑자기 베로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전화 안 받아?"
"이거 받으면 큰일 나."


세상에 받아서 큰일 날 전화는 돈 갚으라는 전화와 심통이 난 여자 친구 전화뿐인 줄 알았는데 터키에는 하나가 더 있었다.


터키 동남부 남자들은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옷깃만 스쳐도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교환하려고 한다. 일단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면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그것도 우리가 대체 얼마나 잘 아는 사이라고 오금이 저릴 정도로 부담스러운 화상통화를 말이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으면 그걸로 끝장이었다. 핸드폰 화면 너머에는 전화를 건 상대와 그의 친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른 나 자신을 원망하며 그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이 순박한 사람들이 사기를 치려는 것도 아니겠거니와 터키인다운 오지랖이라며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린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는 터키어를 모르고 그들은 영어를 몰랐다. 상상해 보라.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딱 한 번 스쳐 지나간 사람과 그 사람의 친구들과 화상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을. 그 어색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얼빠진 미소를 띤 채 유아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긴 침묵이 찾아오면 그때야 비로소 전화를 끊곤 했다.


베로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이틀 전 주유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젊은 남자 직원이었다. 그는 마틴과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베로와 대략 1분 33초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까지 베로에게 무려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그냥 전화가 아닌 화상통화를.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화상통화를 해오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지진이 나서 주유소가 무너지기라도 한 걸까? 오지랖이 폭발하여 자신의 사돈의 팔촌까지 베로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걸까? 어쨌든 베로 또한 그 전화를 받으면 끝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베로의 전화기는 이후로 몇 번인가 더 울렸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샨르우르파 근교의 공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는 다음 날 도심 구경에 나섰다. 메블라디 할릴 모스크를 방문하고 시장에 들렀다. 시장이야말로 도시의 속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여느 시장을 가도 찐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냄새는 언제나 내 삶에 활력과 용기를 준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라고 여기서 주저앉을까 보냐.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 등의 성지로 여겨지는 역사적인 장소를 눈앞에 두고도 그 흔하디흔한 시장의 정취가 더 마음에 와닿는 이유이다.


시장에 들어서니 온갖 물건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의 화려한 전통 의상, 염소 대가리, 소 대가리,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애완용 새들, 차를 배달하는 청년, 담배를 입에 물고 치즈를 파는 아저씨, 반짝반짝 빛나는 식기들, 콩 껍질 벗기는 기계, 피데 배달하는 아이, 피망과 가지 따위를 꽂은 꼬치구이 등 어디에다 눈을 둘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광경이 교차한다.


혼잡한 와중에도 우리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혼자였다면 조금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는 시선이 함께니까 괜찮다. 넉살 좋은 터키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여기서 한 장, 저기서 한 장 또 여기서 한 장. 아주 슈퍼스타 납시었다. BTS가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어떤 사람은 예의를 차리고 우리에게 인사를 한 후 사진을 찍어 간다. 반면, 어떤 사람은 다짜고짜 다가와 “포토?포토?”라는 말을 던진 채 사진만 찍고 떠나가 버린다. 가장 최악은 아무 말도 없이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 우리가 무슨 동물원의 동물이니? 기분이 나쁘지만 그러려니 한다. 터키 동남부에 오면서 사람들이 대체로 더 순박해진 반면, 무례한 사람들은 더 많아진 거 같다.


시장을 나와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내게 이리 와봐, 라며 손짓을 한다. 조심스레 가보았더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서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물론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다만, 할아버지의 인자한 표정과 어조에서 나를 자기 손자처럼 걱정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쭈글쭈글하지만 따뜻한 이 손의 감촉,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데...


스무 살, 재수하던 시절. 나의 친할아버지는 암으로 반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의식을 잃은 채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손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굉장히 힘이 전해져왔다.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살고 싶다는 애처로운 의지. 할아버지는 단순히 내 손을 잡고 있던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한 줌의 힘으로 당신의 삶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놓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왠지 모르게 친할아버지가 떠올라 나도 이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한동안 이렇게 손을 잡은 채 마주 보았다. 내가 “그만 가봐야 한다”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꼭 안아주신다. 노인 특유의 강인함과 다정함이 포근한 체온과 향기를 통해 나에게 전해져 온다. 작별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지만 아이의 그것처럼 해맑은 미소가 걸려 있다.


마야 안젤루는 말했다.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게 한 말과 행동은 잊어버려도 타인에 의해 느낀 감정만큼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멀어져 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그 다정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 다정함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질 거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왜 이렇게 힘들게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