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니?
터키 2~3월의 어느 날 - 이스탄불
- 2월의 스산한 기운이 물러가고 꽃 피는 봄이 찾아올 즈음 나는 조금씩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다. 고대하던 터키식 사우나, 하맘을 찾아나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좌우간 목욕탕을 무진장 좋아하는 나였다. 일본 자전거 여행을 할 때도 온천만 보였다 하면 화색이 되어 일단 들어갔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몸을 담근 적도 있었고 산꼭대기에 있는 천연 노천탕을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었다. 뜨근한 탕에 몸을 담글 수만 있다면 이 지독한 향수병도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터키에 가면 이거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Bay는 신사, Bayan은 숙녀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뜻을 몰랐던 나는 하마터면 여탕의 문을 열어젖힐 뻔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지를 당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남탕의 문을 열자 어떤 배불뚝이 남자가 나를 반겨 주었다. 정성스레 다듬어진 콧수염이고 호탕하고 거칠 것 없는 행동거지이고 누가 봐도 터키의 아저씨 같은 남자였다.
장내는 중국의 토루처럼 중앙에 넓은 공간이 있는 직사각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불뚝이 아저씨는 나를 1평 남짓의 작은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개인 탈의실 겸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는 이 방에는 조그마한 침대와 탁자가 있었다. 침대 위에는 ‘페슈타말’이라고 부르는 목욕가운이 놓여 있었다. 나는 탈의를 하고 지시받은 대로 페슈타말을 하반신에 두른 후, 수건을 한 장 받아 입장했다.
우리나라 사우나와 하맘의 가장 큰 차이는 하맘에는 탕이 없다는 점이다. 사우나에 탕이 없어서야 김빠진 청량음료나 다를 바 없지만 하맘에는 그것을 대체하는 게 있다. '괴벡 타쉬'라고 불리는 대리석 단상이 그것이다. 괴벡 타쉬는 아궁이 주변의 방바닥처럼 강렬한 열을 발산한다. 뭣도 모르고 그냥 누웠다가는 뜨거워서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하지만 천천히 몸을 그 열에 적응시키고 나면 그때부터는 극락이 펼쳐진다.
나는 괴벡 타쉬 위에 몸을 눕혔다. 아...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흐물흐물해지는 거 같은 이 기분 좋은 따뜻함.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무슨 여한이 있을까. 천장을 올려다보자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돔 지붕이 있었다. 돔의 정중앙에는 주먹만 한 창문이 점점이 나있었고 그곳을 통해 옅은 빛이 투과되어 장내를 은은하게 비췄다. 손님은 나뿐이었고 돌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외부의 모든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였기에 장내는 매우 고요했다. 내 마음에 평화와 안식이 절로 깃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홍야홍야하고 있는데 불청객이 나타났다.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때밀이 받을 시간이란다.
때는 민망할 정도로 많이 나왔다. 때밀이로 내 팔을 쭈욱 밀자 때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후로는 숙소에 머물면서 매일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지경인 걸 보면 그동안 묵은 때가 많긴 많았나 보다. 아저씨는 때를 밀면서 ‘흐음, 와아, 히익’ 등 감탄인지 놀라움인지 혐오인지 모를 탄성을 연신 질러대었다. 그러다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 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니?"
"!?!?!?!?"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여자 선배에게 "너 혹시 시골에서 상경했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인사동의 기념품 가게에서 계산하려고 물건을 내밀자 한국인 직원이 대뜸 “It will be 2,000won."이라며 영어로 말했다.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을 했단다. 나는 중국은커녕 대림동조차 가 본 적이 없었다. 조지아의 어느 재래시장에서는 옷을 사는데 가게 주인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신있게 내게 물었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이처럼 내 출신을 오해받은 적이 종종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게 단연 최고였다.
때밀이가 끝나고 곧이어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한데 이건 내가 생각했던 마사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혀 부드럽지 않고 전혀 시원하지도 않다. 그러기는커녕 아프다. 너무 아프다.
아저씨의 손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두드릴 때는 망치로 내 몸을 치는 거 같았고 주물럭거릴 때는 압착기로 내 몸을 짓누르는 거 같았다. '이러다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지만 차마 살살해 달라고 부탁할 순 없었다. 고작 마사지 받는데 징징거리면 ‘너는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거니? 한국 남자는 다 그런 거야?’라며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이 뭉개질 거 같았다. 나는 ‘어억’하는 소리를 내가며 초인적인 인내로 고통을 참았다.
다행히 나는 실신하기 전에 아저씨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었다.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했지만 의외로 무척이나 개운했다. 근육들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진 느낌이었다.
하맘을 나온 나는 수분 보충을 위해 레몬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비벼댔다. 팁을 달라는 소리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까? 터키에서 팁이라니? 하지만 나는 결국 팁을 주기로 했다. 이 아저씨의 음흉한 미소를 보고 판단하건대, 팁을 주지 않으면 “한국인은 때도 많고 엄살도 심한데다 지독한 짠돌이야”라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닐 것만 같았다.
나는 그에게 10리라짜리 지폐를 슬쩍 건네주었다. 한데 이 배은망덕한 인간의 반응이라곤! 그는 돈을 받고 잽싸게 주머니에 넣더니 '고작 이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맙다, 라는 말도 없이 떠나갔다.
하맘을 다녀온 후 나는 한동안 흉골이 욱신거려서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 마사지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터키 하맘의 마사지는 원래 이렇게 파워풀하다고 한다. 하지만 흉골이 욱신거릴 때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