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3월의 어느 날 - 아이딘 ~ 데니즐리
- 터키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스탄불은 물론이거니와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 이즈미르, 코냐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치솟는 확진자 수에 터키 정부는 강력한 행정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스탄불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탄불과 그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모든 페리의 운항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곧 확진자가 치솟는 몇몇 주요 도시들에 봉쇄 조치가 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런 조치들이 하나둘씩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경계심도 높아져 갔다. 이 시기, 터키 사람들 그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짓궂은 아이들이 "코로나, 코로나" 또는 "칭(중국), 칭" 하면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왔다.
식당에 가면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부터 두 눈망울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변하는 사람, 심지어는 유령이라도 본 듯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까지.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 속에 나는 때로는 입장을 거부당했고 때로는 어디서 왔고 언제 터키에 입국했는지 등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한 후에야 겨우 5리라짜리 되네르 케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내 자전거 여행은 그 본연의 기쁨을 잃어 갔고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그러던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는 아이딘(Aydin)과 데니즐리(Denizli) 사이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계산을 하는데 한 직원이 허둥지둥 내게 달려와 말을 건넨다.
"쏼라쏼라 쏼라쏼라."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표정을 보니 뭔가 급박한 일이 터진 거 같았다. 그는 내게 어서 밖으로 나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불이라도 났나, 라고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와 보니 헉! 사방천지에 경찰들이 쫙 깔려있었다. 여러 대의 경찰차가 물샐틈없이 슈퍼마켓을 포위하고 있었고 열댓 명의 경찰관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경찰들 너머로는 지역 주민들이 양떼구름처럼 옹기종기 모여 호기심과 걱정 어린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는 한 10초 정도 돌부처처럼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어떤 중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 때문이구나! 코로나 때문이구나! 누군가가 나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구나!'
은행을 턴 무장 강도와 그걸 저지하러 출동한 특수 기동대. 공교롭게도 마스크와 안경, 비니 모자를 쓰고 있는 나는 적어도 겉모습에서는 복면 무장 강도와 다를 게 없었다. 내 손에 자동소총과 돈가방만 들려 있었다면 영락없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일터. 사실 내게는 총보다 더욱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이 당시는 대다수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불안을 낳는 법이다.
그 누구도 감히 내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경찰조차 나와 5m 이상 떨어진 채, 자동차 문짝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다. 경찰 한 명이 영어로 내 신상 정보를 물었다. 유얼 네임? 김두호. 유얼 컨츄리? 코리아. 스픽 털키쉬? 노, 아임 쏴리. 잉글리쉬? 예스. 잉글리쉬 이즈 오케이.
경찰의 영어가 짧아서인지 질문은 그걸로 끝이었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은 곤혹스러워했고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서로의 눈만을 부라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중년의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는 용감한 그녀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나와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춘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경찰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로 터키에 입국했는지가 궁금하대."
그녀의 도움 덕분에 경찰과 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경찰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앞으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이스탄불에는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떻게 이스탄불을 벗어났는지 등. 대답하는 도중, 사람들의 거북한 시선이 느껴졌고 왠지 모르게 억하심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병자 취급, 죄인 취급 받아야 한다는 데에 화가 났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통역을 해주던 여성을 향해 소리쳤다.
"저 코로나 바이러스 안 걸렸어요! 최근에 아픈 적도 없고 사람도 거의 안 만났다구요!"
그녀는 내 말속에 담긴 분노와 흥분을 감지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알고 있어. 우리는 그저 너를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나는 슈퍼마켓 출입구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경찰들 중 몇 명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더니 혹시 이대로 격리 시설 같은 곳에 보내지거나 터키에서 강제 추방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내 여행이 끝나게 된다면 고것 참 볼만하겠다. 아마 평생의 후회로 남게 되겠지.
마침내 경찰로부터 선고가 내려졌다. '가도 좋다'였다. 경찰들은 출동만큼이나 빠르게 철수했고 주변 사람들도 송사리 흩어지듯 하나둘 사라졌다. 주위는 어느새 마치 모래 폭풍이 지나간 사막처럼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 나 또한 혹시라도 경찰이 마음을 바꿀까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가뜩이나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이 쉽지 않은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일어나다니. 어디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런 흉흉한 시국에 고집스럽게 여행을 강행하고 있는 나 자신을 탓해야지.
마을을 벗어나면서 나를 경찰에 신고한 누군가를 그려보았다. 그 누군가는 마을을 걷다가 나와 우연히 눈이 마주친 아저씨일 수도 또는 슈퍼마켓에 들어가기 직전 나를 보고 깜짝 놀란 아주머니일 수도 있다. 출동한 경찰들의 민첩함과 그 규모를 생각해 보았을 때 신고자는 분명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경찰이죠? 큰일 났어요! 일로 빨리 좀 와주세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