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마라톤으로 상을 받다니!

by 철봉조사러너

바쁜 업무 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홍보 같지는 않아서 바로 받았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하프마라톤 우수자로 선정되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시청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여가 가능하실까요?"


세상에나...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비록 올해 부상으로 인해 통으로 한 해를 날렸지만, 나름 나는 러너인생 15년 동안 풀코스 완주 10회와 무수히 많은 대회에 참가한 베테랑 러너이지만, 수상권은 근처도 가지 못했다. 꾸준한 러너이긴 했지만, 우수한 러너는 명백히 아니었다. 더욱 슬픈 현실은 나의 몸상태로는 앞으로도 다시 예전과 같이 뛰지 못할 확률도 크다...



이 상의 정체는 '독서마라톤'이다. 이 대회는 독서활동에 마라톤을 접목시켜 선택한 독서코스로 완주하는 책 읽기 경주이며, 우수자와 완주자에게 다양한 혜택이 부여된다. 지자체별로 다소 상이한 듯 하지만 내가 자주 빌린 도서관의 대여 기록과 남긴 기록일지 등을 토대로 선정되는 '매우 좋은' 독서 장려 정책이다.


2024년 제9회 독서마라톤 대회 (gm.go.kr)


나는 이 하프코스의 우수자로 선정된 것이다. 하프코스는 1년 동안(대회 기간 약 10개월) 300쪽 기준의 책 약 36권(10개월 기준, 월 4.5권)에 해당되며, 풀코스는 71권(월 8.8권)을 읽어야 한다. 사실 연에 책은 100권 이상 보긴 하지만, 나름 선물 받거나 사서 보는 책도 있고, e-book도 많이 보는지라... 어쨌든 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주는지도 몰랐다),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출처: 광명시도서관 독서마라톤 홈페이지 중 '우수자 선정요소 및 혜택'


올해 달리기를 잃었다. 원인 불명의 통증은 나를 대표하는 가장 큰 개성을 빼앗아가 버렸다. 매일 밤 달리기를 하면서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행복감, 자신감도 함께 사라졌다. 솔직히 이제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춤이라기보다 레슬링에 가깝다. 매 순간 불시의 일격에 대비하여 꿋꿋이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하지만 그래서 매진한 독서와 글쓰기는 올해 나에게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성과를 주었다. 강의와 수상, 논문 등재, 우수한 창의력과 판단력까지! 나의 정체성이 바뀌어 버렸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상을 받게 되어 너무 기쁘다. 올해 슬픈 일과 좋은 일이 너무 많은 한 해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솔직히 이것보다 더 큰 상도 받아봤지만(자랑...),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듯하다. 나의 길이 맞는구나를 보여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아빠의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더욱 기쁘다.


11월부터 조금씩 다시 달리고 있다. 사실 달리는 러닝이라기보다는 느린 조깅, 혹은 워킹의 수준이지만 조금씩 나아짐을 느낀다.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일전에는 미처 몰랐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에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류시화>


인생을 살면서 꼭 나쁜 일이라고 겪는 일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을 내가 판단할 수 있을까? 정말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리고 개척하는 누군가의 '계시'가 아닐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새삼 삶의 위대함까지도 느끼게 한다.


올해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앞으로 빠르게 달리기 위한 '기록(Record)'이 아닌,

더욱 의미 있는 인생을 '기록(Write)'을 하는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분명한 것은,


나는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마라토너라는 사실이다.

KakaoTalk_20241227_175123306_02.jpg
KakaoTalk_20241227_175123306_01.jpg
KakaoTalk_20241227_175123306.jpg
KakaoTalk_20241227_175123306_03.jpg
KakaoTalk_20241227_174051953_12.jpg
KakaoTalk_20241227_174051953.jpg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5화달리기 결승선 도착을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