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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봉조사 이상은 Nov 20. 2023

달리기 은퇴를 선런(Run)하다.

나의 2023년 JTBC 서울마라톤 결과를 직면하는 시간

 살다 보면 그런 날들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너무 기분이 좋다.”

“왜 이리 뭐든지 잘 맞아 들어가지?!”

“오늘 정말 사고 한번 제대로 치겠는데!”


 기안84의 마라톤이 정말 화제인가 보다.  2023년 10월 8일 대청호마라톤 4시간47분 완주란다. 달리기에 관심이 없는 나의 지인들도 달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온다. 그의 도전에 많이 감동했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달리기 투머치토커인 내가 많은 관심과 조언을 해 줬을텐데... 그런가보다 싶다. 실제와 방송시기는 차이가 좀 있으니, 11월 5일 JTBC 서울마라톤에서 최악의 달리기를 한 나는 지금 심드렁하다.   


 어쨌든 정말 너무 순조로웠다. 모든 우주의 기운이 나한테 모여있는 것 같았다. 한 달 반 정말 미친 듯이 몰입했었다. 제일 바쁜 시기의 직장 생활. 육아, 개인적인 프로젝트들, 가족과의 소통 내게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올해 가장 고대한 날 ‘2023 JTBC 마라톤’ 그날이다. 올해 반드시 3시 10분 이내 ‘싱글’을 멋지게 달성한다!


 바쁜 일정들로 인해 훈련은 부족했지만, 정말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급격한 훈련으로 부상을 아슬아슬 오갔으나 결국 버텨냈다. 달리기를 시작으로 나의 브랜드 수립과 내 직장과 사회복지 현장의 긍정적 에너지 부여라는 사명의 이정표가 될 날이었다.


 하늘도 도우셨다. 새벽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시작 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완벽한 응원, 완벽한 기분, 완벽히 몰입하여 출발했다. 20km까지 아주 순조로웠다. 조금 몸이 안 풀리긴 했지만, 곧 숨통이 터질 거라고 기대했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몸이 흠뻑 젖은 채 25km 지점. 급격히 무너졌다. 30km 부터는 이미 내 몸이 아니었고, 목표는커녕, 원래 내 기록보다도 느린 페이스로 떨어졌다. 하나.. 둘… 많은 주자들이 나를 제치고 나아갔다.


 “졌다”  정말 완벽한 패배.


 비가 심하게 온지라 엠뷸런스를 타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정말 아무런 의미와 동기가 없었다. 나도 타고 싶었다. ‘Did not finish(DNF)’


그래도 그 와중에도 DNF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최대한 페이스를 줄이고 버티기라도 하자!”


 결국 완주했다. 3시간 20분 54초. 마라톤의 가장 큰 가치는 완주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너무 내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그 와중에 마라톤 스탭 분들이 메달을 걸어주면서,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줬다. 비는 왜 이리 내리는지… 선글라스에 빗방울들이 엉켜 있어 벗고 있었는데... 바로 선글라스를 썼다. 박수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욱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보관 짐을 찾으러 갔더니, 스탭분이 짐을 주면서 또 수고했다고 해줬다. 또 감정이 올라와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달리기 전(좌), 후(우) 사진.  그리 뛰어놓고, 사진은 찍는다고 또 웃기는 하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너무 적게 달렸다. 기본 이 정도의 목표 기록을 내려면 월 300km 이상은 꾸준히 달려줘야 되는데, 나는 300은 커녕 200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고, 대회 직전에야 300에 근접했으니.. 근본적으로 안되는게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큰 가족과 직장과 일상의 희생을 해야되는데,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법을 알지만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이제 달리기 접는다. 누군가는 열정이라고 좋게 표현해 주겠지만, 나는 기록에 정말 '집착' 한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는 아주 명확한 증거니까. 그것이 달리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바로 대회 다음날부터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난 달리기 은퇴했다고, 이름하여 은퇴선런(Run)이라고" 


진정성과 목적경영에 대한 최고의 리더십 책(좌), 운동하는 사람은 격하게 공감할 책(우)


 이화여자대학교의 윤정구 교수님의 <황금수도꼭지> 에서 진정성, 리더십을 설명하면서 '긍휼감' 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긍휼감(Compassion)이란 공감이나 연민을 넘어서는 행동지향의 도덕적 정서이다." "긍휼감을 가진 사람은 고통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자신도 비슷한 고통을 넘어서는 행동지향의 도덕적 정서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타인에 대한 긍휼감을 자기에도 적용하는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이 되어야 한다. 원인을 보니 무언가 아님을 느꼈다. 누군가에는 부러울 수 있는 '3시간20분' 마라톤의 기록일 것이다. 나 자신의 결과를 용납못하는 사람이 과연 달리기를 긍정적으로 즐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유영만 교수님, 김예림 운동심리학자님의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에서는 운동의 중요성을 철저히 강조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 자체에 집중해 기꺼이 결과가 오기까지의 시간을 기꺼이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경험은 몸에 그대로 담겨 멘탈이 된다." 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달리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달리기 습관' 을 통해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는 선수가 아니며, 선수 비슷하게 될 수도 없다. 나는 왜 단순한 논리를 왜 매번 잊고서 사는건가 싶다. 


 그래서 진정 은퇴하려고 한다. 정확히는 기록에 대한 은퇴, 그 놈의 '싱글' 에 대한 은퇴 말이다. 즐겁고 행복하게 하고 싶다. 긍정적인 습관을 통한 일상의 몰입. 그리고 그를 통한 삶의 변화를 철저히 세우고자 한다. 혹시 아나, 과정을 즐기면 진짜 선물처럼 멋진 결과가 올지? 어쨌든 은.퇴.선.#런(Run) 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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