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계절

- 수묵과 나목

by 하늬바람

(물음표 쉼표 느낌표)

올해 브런치에 둥지를 틀고 글을 써왔는데 이번편으로 100번째가 되었네요. 한해가 지나갑니다.


메마른 계절

- 수묵과 나목


겨울이 되니 입술이 메마르고 갈라져 그 입에서 나오는 언어도 건조해집니다. 손등과 손가락 피부도 까칠해져서 그 손이 쓰는 글에도 물기가 사라집니다.

립밤, 바셀린, 핸드크림으로 겨우 남은 수분을 감싸 쥔 채 겨울 거리에 나섭니다.


거리엔 차가운 공기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등뒤로 한기를 뿜어냅니다. 한 방울의 물마저 빼버린 나무 주변에는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이 뒹굴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온기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선술집에 모여있습니다. 그들 사이로 들어가 차가워진 몸을 알콜로 데워봅니다. 하지만 알콜은 얼마 남지 않은 수분마저 탈수와 이뇨로 증발시켜 버립니다.

말은 찬바람보다 더 날카로워지고 마음은 가난해집니다. 외로운 이들의 술잔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세밑 풍경은 이처럼 쓸쓸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보다 지난 한해의 보내야하는 것들이 먼저 다가옵니다. 내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난 한해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기 때문일겁니다.


저번 글에서 계절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봄은 화사한 파스텔화,

여름은 물기 가득한 수채화,

가을은 알록달록 유화,

그리고 겨울은 수묵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번글을 쓸 때는 유화 같은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겨울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겨울은 다른 어떤 색도 필요하지 않은, 아니 모든 색을 떨쳐버리고 그 원형질만 남아 외로운 밤과도 같은 계절입니다. 색깔이 없어도 그 여백과 선들만으로 별빛이 느껴지고 나무의 외로움이 보이고 그 감정이 전달되는 수묵화와 겨울은 많이 닮았습니다.

저의 메마르고 거친 입술처럼 겨울 나무의 줄기도 부르터있습니다. 하지만 수분을 보충해야 되는 저와달리 물 한방울까지 다 버리고 겨울을 나는 생존이 놀랍기만합니다. 겨울에 모든걸 떨궈버리고 외로이 서있는 나무를 나목이라 부릅니다.


(아이패드로 수묵화 느낌나게 그려본 겨울나무)


이 겨울에 벌거벗은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신경림 시인의 시 '나목'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나목',

그리고 그 소설의 모티브가 된 박수근 화가의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작품까지

소위 3종셑트로 한꺼번에 묶여 떠오릅니다.

그래서 시를 읽어봅니다.


나목(裸木)

-신경림-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 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끝


마지막에 ‘알고 있을까’ 하고 묻는 게
저에게 묻는 물음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