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 때문에 슬프다
(내맘대로 문학기행)
연일 폭염으로 힘든 날들입니다.
조금이라도 시원해지는 방법은 옛 선조들처럼 독서 삼매경에 빠지거나, 그게 어려우면 시원한 장소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래서 시원한 장소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번 홋카이도 에 이어 이번에는 그만큼 추운 곳, 일본의 니가타입니다.
몇 년 전 일본에 이쪽 지방 출장을 왔다가 써놓은 글이 있어 다시 정리해서 브런치 스토리에 처음 올립니다.
- - - -
"국경의 긴 터널을 넘어서자, 그곳은 설국이었다."
이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설국(雪國)'의 배경이 되는 고장 니가타 현...
일본 출장 중에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인 이곳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라 홋카이도에 있는 지방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일본 본섬에 있답니다.
도쿄와 군마현 위쪽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어 아주 긴 터널을 지나야 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출발 전에 '설국'을 다시 읽기 시작하여 비행기나 신간센에서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은 탓인지 전에 읽은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억에는 1930년대 일본의 온천 마을의 눈 쌓인 풍경을 묘사한 아름다운 문장만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게 되었다랄까요..
이 소설로 일본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실제 이 소설을 니가타에 위치한 '에치고 유자와'라는 유명한 온천 마을에서 집필했다고 합니다.
(에치고 유자와 온천마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꼭 위대한 문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수상작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대적 상황, 국력 등 이 더 작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문학으로서의 성취를 이루었거나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도쿄에서 삼 일간 머물다 마지막에 니가타현의 도청소재지인 '나가오카'에 머물렀는데,
긴 터널을 지나 창밖에 나타나는 설국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소설의 느낌을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사진 속 뒷 배경의 산맥을 그 긴 터널로 지나가게 됩니다. 이름은 '시즈미 터널'인데 1967년에 무려 13.5km로 당시 전 세계 가장 긴 터널이었고,
이후 1979년에 다시 22.2km의 '다이 시즈미터널'을 다시 또 뚫어서 지금은 이 터널을 지나옵니다.
눈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 한번 오면 2m 이상 오는 경우가 많아 사진처럼 도로와 인도의 경계를 알 수 있도록 하고, 눈이 쌓임의 높이도 알 수 있도록 폴대를 세워놓았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기차의 유리창에 저녁놀 풍경이 보이는데, 그것은 또 거울의 작용을 통해서 처녀의 얼굴을 비춰낸다.
처녀의 얼굴 위로 저녁 풍경이 흐르고, 들과 산에 등불이 켜지자 그것은 처녀의 눈과 겹쳐 눈동자에 등불을 켠 듯이 보인다."
처음 기차를 타고 설국으로 넘어가는 주인공의 독백 부분입니다.
이 묘사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는데,
독자인 저로서는 숨어보는 듯한 묘한 감정과 은은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치 알퐁스 도테의 '별'이나 황순원의 '소나기'를 성인 버전으로 만난 그런 느낌이랄까요.
조그만 시골마을 자연의 풍경 속에 그려지는 순수한 인간의 감성이 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요코와 고마코라는 두 여성이 담아내는 일상과 묘한 분위기로 직접적인 묘사 없이도 소설 속 감성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내보이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작가 카와바타 야스나리를 '탐미주의' 작가의 시초로 평가하는가 봅니다.
탐미주의란 일본문학에 나타난 특징이자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는데, 문자 그대로 아름다움을 탐하는 문학을 말합니다.
건물이나 자연, 여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집착하고
그걸 통해 문학이 추구하는 건 오로지 '아름다움'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미문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신경숙 작가입니다.
얼마 전 일본의 탐미주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해서 문단이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표절했다고 한 문장들이 바로 카와바타 야스나리를 스승으로 모시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표절 논란의 결론은 잘 모릅니다.
이분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 절정이라 할 작품인 “금각사” 가 유명합니다. 교토에 실제 있는 절인데 그 절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스님이 불을 지른 실제 사건을 소설로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탐미주의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작가는 ‘다니자키 주니치로’입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분의 책
“만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인 “에드가 앨런 포” 는 시가 다루어야 할 유일한 정통영역은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에 최고의 표현을 주는 것은 슬픔이라고 말했습니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도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슬픔을 통해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슬프고, 슬프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는 생의 마지막을 자살로 마감하는데,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려나요..
앞서 이야기한 그의 제자 격인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도 젊은 나이에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삶을 마감했으니 말입니다.
극단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들은 삶도 극단적으로 나가나 봅니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넘어서자, 그곳은 설국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마침내 출구에 도착했을 때 나타나는. 흰 눈의 경치라는 것은
흑백의 대칭을 통해 무척이나 선명한 느낌을 줍니다.
마치 기차에 타고 터널을 지나 낯선 곳에 막 다다른 느낌을 들게 말이지요.
낯선 곳, 이국적 느낌의 문학이 주는 느낌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인생의 낯섬도 마친 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터널 밖 세상을 마주해야 될 때,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겠죠..
- 하늬바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