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내맘대로 문학기행)
벚꽃. 애니. 문학 -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오늘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탓도 있지만 자전거로 벚꽃 구경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휘날리는 벚꽃을 보며 떠오른 대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래."
"응? 뭐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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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물론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실제로 누가 속도를 재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사는 벚꽃이 휘날린다는 감성에
물리적 속도라는 측정치를 부여함으로써 색다른 이미지를 인상 깊게 부여합니다.
고속도로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내달리는 저에게는 이 표현에서 묘하게 낯섦과 친근함이 함께 느껴집니다.
얼마나 느린 속도인지 측정해보고 싶은 충동까지도 일어납니다.
낯선 이유는 한 번도 벚꽃의 흩날림을 속도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친근한 이유는 이과생이라 숫자에 익숙한 탓일 겁니다.
여기서 이 대사를 다시 음미해 보면, 느린 속도로 살다 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건지,
이 순간이 천천히 흘러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 건지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저는 후자에 두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내용이 그러하니까요~
요즘 정말로. 온통 벚꽃이 눈을 부시게 합니다.
느리게 떨어지고 천천히 살아도 되겠다는 감성을 주는 초속 5센티미터들이 자전거길에 휘날리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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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나왔으니, 얼마 전 써놓았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에 대한 글을 여기에 붙여봅니다.
이 작품에서도 벚꽃과 벚나무는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합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는 소설,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세 가지 매체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있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예전에 애니로 보았고, 저번에 실사 영화로 보고 다시 집에서 금각사 장면 찾아보다가 한번 더보게 된 인연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좀 엽기적인데 실제 의미는 췌장이 아픈 여주인공이 옛날 사람들은 치료를 목적으로 자신이 아픈 부위와 똑같은 동물의 부위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주인공에게 건네는 말에서 나옵니다.
이 작품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제 입장에선 솔직히 조금은 유치한 느낌이 드는 면도 있었습니다.
첫사랑과 학창시설이라는 테마는 일본과 대만 작품들 위주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는 듯합니다.
비슷한 듯 아닌 듯하면서 아련한 추억 속으로 소환시키는 그런 작품들이죠,
“러브레터, 말할 수 없는 비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초속 5cm, 너의 췌장... “ 등등
특히 이 "너의 췌장..."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며 ”어린 왕자“ 의 문구를 인용해서 말하고, 남자친구에게 “어린 왕자” 책을 선물합니다.
그 이후로도 주요 장면마다 이 책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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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이 책의 저자인 생텍쥐베리는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실제 불시착과 추락 사고도 많이 겪었고, 그런 생생한 경험을 인간의 대지 등 소설로 잘 남겨주었습니다.
특히나 어린 왕자 소설은 지구에 불시착한 왕자가 여우와 만나 이야기하는 형태의 어른 동화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책이라는 게 어렸을 때 읽을 때와 나이 들고 이러저러한 경험이 쌓인 후에 읽는 게 달라진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리나 콘텍스트가 재구성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 들어 읽으면 그때 몰랐던 걸 이제는 알게 되거나 다르게 이해되는 면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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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전쟁, 제국주의 간 식민지 침탈이 계속되던 시기
생텍쥐베리와 같은 작가들을 행동주의 작가,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행동주의 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등 실제 체험을 통해 쓴 문학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수송품을 나르며 별들과 대화했을 생텍쥐페리,
그리고 전쟁 참여 후 ”무기여 잘 있거라 “를 쓰고 쿠바 해변에서 직접 낚시하면서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 정말 대단한 작가죠…
그리고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중국 혁명군에 함께 참여해 혁명가들의 숭고함을 기록하여
“인간의 조건”이라는 소설로 만든 “앙드레 말로”
이런 작가들이 대표적인 행동주의 작가라 할만합니다.
사실 허구의 세계인 소설을 어찌 다 겪어보고 쓸 수는 없겠지만 이 분들의 작품에는 생생함,, 요즘엔 리얼리티라고 하나요,,
거기에다 작가가 1인칭 시점으로 직접 생사를 겪으면서 생각하고 고민했을 터이니 본능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글이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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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많이 벗어났는데 다시 “너의 췌장.. ” 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어린 왕자에 나온 왕자와 여우의 만남 같은 짧지만 너 안에 영원할 거라는 그런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사쿠라가 죽은 후 사쿠라가 숨겨놓은 “어린 왕자” 책을 찾고, 그 책 안에 남겨둔 벚꽃의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남자 주인공 이름이 그동안은 ‘성’만 나오다가 벚꽃의 어머니가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하루키라고 합니다.
저는 유명작가 하루키의 오마쥬인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남자 하루키는 한자로 “봄 나무 “ (春樹)이고 여자 이름 벚꽃은 ‘벚꽃’ 이니
결국 대사 중에 나온 “벚꽃은 지지 않고 나무속에 죽은 척 계속 살아있다” 는 작가의 의도였네요.
제목인 ”췌장을 먹고 싶어 “부터 어린 왕자, 그리고 주인공 이름까지 나름 치밀하게 짜인 거였습니다.
실제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베리는 마지막 비행에서 실종됩니다. 영원히 찾지 못했죠.
어린 왕자의 별로 갔으려나요..
마치 벚꽃이 죽지 않고 벚나무에 살아있는 것처럼
우리 옆에 문학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는 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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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 한 조각..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 나온 “금각사” 책입니다.. 다시 한번 보다가 이 장면 캡처했습니다.
이 책 뒤에 벚꽃의 일기 “공병문고”가 있었네요.
다음에 금각사 책은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