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스스로의 외로움
(내맘대로 문학기행)
- 인간 스스로의 외로움
최근에 올해 나온 책 ‘너의 유토피아’를 읽고 있습니다. 정보라 님의 공상과학 8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우리나라 공상과학(SF) 소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젊은 여성작가님들 위주로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SF소설로 책을 접했던 저는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김초엽 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공상과학 소설로써도 현실을 빗댄 소설로도 많이 다가온 책이었습니다. 이 책도 7편의 단편을 묶은 책입니다.
두책 모두 미래를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인간과 대별되는 차가운 이미지의 세상으로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도 따뜻한 인간성을 보여주거나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주제가 많습니다.
서민들,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소외를 없앤다는 미래의 모습이 또 다른 차별을 만드는 건 아닌지 그런 문제의식이 느껴지기도 하고, 읽는 내내 작가의 글은 늘 따뜻했습니다.
단편이 주는 장점은 확실히 있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고, 줄거리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고 짧은 분량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저 같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책들을 보니 단편이 공상과학 소설에 적합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장르 문학으로서 공상과학(SF) 소설류에서는 인공지능이나 우주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이 많이 펼쳐집니다.
예전에는 소설 속에서나 가능했던 인공지능이 이제 현실이 돼 가고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멋지거나 강한 외모를 갖춘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그 능력은 이제 사람들에게 신기함과 더불어 약간의 공포감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수많은 공상과학소설을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SF의 고전이 된 '우주전쟁'에서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한 모습을 보며 가슴을 졸이면서도, 저 넓은 은하와 우주엔 어떤 생물체가 살고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진공관 안에 우주를 만들어놓고 실험하는 어떤 과학자에 의해 우리 은하와 지구가 생성되고 그 안에 한 점도 안 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기억한 편에 남아있네요..
제가 읽은 공상과학소설로 제일 인상 깊은 작품으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입니다.
아주 오래된 작품 시리즈로 30권의 방대한 분량인데 몇 년 전에 문고판 7권 완판으로 재편집되어 나왔다는 소식도 있네요.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한데 SF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저는 이 책을 군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남들이 다 자는 밤마다 내무반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조그만 불빛에 기대 책을 읽었습니다.
군대라는 막힌 세상에서 무한하게 넓은 우주와 알 수 없는 미래의 세상으로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펴고 책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 책을 공수하느라 힘드신 분에게 저는 늘 고마워하고 살고 있답니다. 저에게 무한한 우주를 선사했으니까요.
그때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문제점도 많이 떠오르고,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저의 미래 속에서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인간과 역사에 대해 실천적 인식을 다시 세워보고도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하여튼 은하수처럼 길게 늘어선 '파운데이션'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방대한 내용 속으로 삶의 도피도 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해갈을 해나가고 있었으려나요..
파운데이션이라는 작품은 그 이후로 많은 작품들의 기본 바탕이자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들도 이 작품에 나왔던 내용들의 단편성격인 것들도 있고, 그 플롯을 가져온 것들이 무지 많습니다.
단순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공경, 불안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전 우주를 배경으로 공상과학이라는 틀 안에 사회, 경제, 역사, 심리, 과학, 등 인간의 지성이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이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상과학분야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소설들은 주로 우주에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명체와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ET처럼 평화롭고 감성적으로 만날 수도 있지만, 지구를 새로운 식민지로 삼거나 자원을 얻기 위해 공격해 오는 무시무시한 생명체들과의 만남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라는 무한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게 문학으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그리고 어느 시기에서부턴가는 공상과학 소설의 내용이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주를 이룹니다.
기계문명의 발달과 새롭게 등장한 컴퓨터 환경 속에서 인간들의 상상력은 우주 생명체보다는 인간이 만든 새로운 생명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거겠지요.
컴퓨터나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해 인간이 지배되리라는 인류멸망의 묵시록 같은 소설과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에 온 생명체의 외모도 예전에는 문어나 원숭이, 아니면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부터는 고도화된 기계 같은 생명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외계생명체가 트랜스포머, 디스트릭트 영화에 나오는 로봇 같은 기계형태를 하고 있지요.
그리고 영화로 익숙한 터미네이터처럼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한 인간지배 스토리는 너무나 많습니다. 매트릭스에서는 시스템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키려 하기도 하고, 트랜센던스에서는 인간의 지능과 컴퓨터가 합쳐지는 과정으로 전개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가 담겨있는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바이센터니얼 맨'과 '엑스 마키나' 등등이 떠오르네요.
요즘 넷플릭스에서는 이런 소재를 다루는 단편 SF 옴니버스가 많이 나오고 있고, 퀄리티도 굉장히 수준급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공상과학류 작품들이 다시 인간의 문제로 돌아온 듯합니다.
몇 년 전부터인가 나오는 소설 작품들, 영화를 보면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우주를 대하는 인간의 사고의 방향이 전환된 느낌입니다.
스토리 구조도 굉장히 단순한데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 주입니다.
우주에서 외계인과 조우하지도 않고, 인간지능 로봇이나 시스템과의 전쟁도 없고
그저 무한한 우주의 세계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모습이 잔잔히 전달됩니다.
결국 우주는 인간자체가 아닐까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잘못된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한 것처럼 이 우주에 지구만이 유일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일 수도 있다는 외로움과 공포가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정리하자면 처음엔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두려움, 그다음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젠 인간 스스로의 외로움에 대한 공포이려나요~
앞에 소개했던 우리나라 작가 두 분의 책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물씬 납니다. 한강 작가에 이어 SF 분야 세계적인 상을 수상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