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 문학

육체, 성, 욕망, 관능

by 하늬바람

(내맘대로 문학기행)

- 에로티시즘


참 흥미롭고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시네마 천국’이란 이탈리아 영화에서는 1940년대 키스장면이 몽땅 잘려나간 상영관의 시대를 추억처럼 흑백으로 보여줍니다. 전체 줄거리는 알프레도와 토토의 나이를 넘어선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소년 '토토'가 영화를 통해 성적인 호기심과 성적 욕망을 처음 경험하는 장면들이 은근히 묘사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에로티시즘을 시작하겠습니다.


에로티시즘 미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는 ‘에곤 실레’입니다. 그의 스승 ‘구스타프 클림트’ 도 빠지지 않는 작가입니다. 미술 분야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신윤복 화가도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에로티시즘 하면 영화나 미술보다 더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서있던 건 문학입니다.

장르 문학으로 에로티시즘은 다루고 싶은 주제이긴 한데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쓰고자 하기에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 분야는 외설과 예술을 양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으로 놓고 보면 경계도 모호하고 시대별, 국가별 판단 가치도 많이 다릅니다. 개인적 취향과 그에 반하는 사회적 도덕적 기준이라는 이중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수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도 고민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 위주의 생각으로 그냥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에로티시즘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욕망인 식욕, 성욕은 그 자체만으로는 개개인이 갖는 본능입니다. 개인이 이 욕망을 해결하거나 향유할 때는 단순히 음식, 성행위일뿐입니다. 그러나 이를 미학적 예술로 추상화시키게 되면 음식은 세프가 하는 요리예술이 되고, 성행위는 에로티시즘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로티시즘은 관점을 전제한다는 점입니다. 성욕이라는 게 주체와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체와 성적 대상이라는 사적 속성을 관점을 가지고 대상화시켜서 판단 가능한 영역으로 가져오게 되면 에로티시즘이라 할 수 있게 됩니다.


전문적 의견을 인용해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성행위를 하거나 자위를 한다면 그건 그냥 성욕의 발산일 뿐이지만 그걸 보는 관점을 대입을 시키고 그 관점을 통해 그러고 있는 사람을 미학적으로 판단한다면 그건 에로티시즘이다.’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공적 영역으로 가져오는 대신 상업적으로 유통을 시키는 것을 포르노 그라피 라고 하는데, 포르노그라피는 성적인 것을 그 자체로 대상화하지 못하고 여전히 성적인 대상으로 남겨 두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이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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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는 영국 작가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연인)"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제가 에로티시즘으로 읽은 첫 번째 소설입니다. 중학생 때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문학전집에 단골로 들어가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신분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에 여성이 성에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음을 소설 속에 당당하게 표현했습니다. 시대적 억압과 계급, 결혼이라는 관습에서 벗어난 능동적 모습이 시원한 빗줄기 속에서 뛰어가는 소설 장면으로 오랫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적 욕망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모습, 그 육체와 행위를 주변 배경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당시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오랜 세월 금서로 묶여있다가 50년이 지난 1960년대에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어 큰 히트를 쳤고, 많은 문학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학문적으로도 연구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위상은 에로티시즘만으로 이야기할 수준은 넘어서 있다고 보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단테를 잇는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흑사병 시대의 상황을 그린 작품인데 주로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부도덕함과 성적 문란을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그걸 에로티시즘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의 관점과 느낌으로는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에로티시즘으로 풍자하고 추상화했으니까요. 이 책도 청소년기에 세계문학전집에서 만났습니다.

영국의 D.H 로렌스나 이탈리아의 보카치오가 살던 시절에는 종교적 도덕성이 강조되고, 금욕이 선이 되는 사회였기에 금기를 넘어서기가 힘듭니다. 우리나라 같은 유교영향이 큰 나라에서는 더할 말이 없습니다.

근엄한 종교, 교양과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에로티시즘은 늘 비주류이거나 터부시되는 금기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양과 권위, 윤리의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인간의 육체, 성, 내면의 욕망이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대가 흘러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에로티시즘은 상품화되어서 끝없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광고, 뉴스, 인터넷 어딜 가나 성과 에로티시즘이 넘쳐납니다. 과히 성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몸매도 섹시해야 착한 게 되고, 섹시한 배우, 화장품 이름에는 에로틱이 들어가야 있어 보이고, 섹시한 향수, 섹시한 맛, 뇌마저도 섹시하다는 ‘뇌섹남’이라는 황당한 조어 표현은 이 사회의 성문화 자체가 과잉인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에로티시즘은 포르노 그라피와 혼재되어 미학보다는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소비를 위한 성 상품화와는 별도로 예술계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통한 내면을 제대로 보자는 게 에로티시즘의 시초이다 보니 현재까지 다양하게 변화 발전해 온 면이 있습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앞서 소개한 소설들처럼 외설논란에 늘 시달리고, 통속적이라 저급문화라 비하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걸 극복하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으로 문학계에 자리 잡은 작품들이 꽤나 있습니다.


영국에 DH 로렌스가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에로티시즘 문학으로 보들레르의 작품을 꼽을만합니다.

악의 꽃, 보석등의 시에서는 관능이 넘실거립니다.

"작은 죽음"이라고도 불리는 관능미를 통해 육체적 쾌락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도달한 절정이 바로 실제 인간의 모습, 내면에 은닉돼 있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알려줍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제기를 던지고 인간의 벌거벗은 실체와 욕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해 보자는 게 보들레르의 목적이었을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일반화시키고 확장시키는 데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일본문학에서는 이쪽 분야로 아주 대단한 작가들이 있는데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뻔했던 다니자키 주니치로가 대표주자입니다.

이분의 에로티시즘 작품 전집까지 있을 정도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페티시즘과 관음증이라고 할 정도의 모습들도 보여줍니다. 세밀하면서도 은밀하게 그 분위기를 특별하게 묘사해서 저도 모르게 그 글 속으로 눈과 마음이 사로잡혀 들어갑니다.

미국의 가장 대표작으로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빼놓고 갈 수 없습니다. 막장소설 같은 전개이긴 한데 이 책의 영향력도 무시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로티시즘이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어 인정받은 작품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광수 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 등이 있었지만, 논란만 키웠지 문학성과 예술성에서는 평가받지 못했고, 저 역시 에로티시즘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

음란, 외설, 풍기문란 저질 작품인지 아니면 예술인지 그걸 판단하는 건 시대와 독자의 몫이 클 거라 생각해 봅니다.

에로티시즘의 세계는 ‘데카메론’이나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밤새워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없는 이야기일지라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2화로 준비하던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