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방울로부터 나이아가라 폭포
(내맘대로 문학기행)
제가 어렸을 때 처음 접한 책은 동화책과 만화책 다음으로 추리소설과 공상과학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돌려보던 괴도 루팡과 셜록 홈즈의 시리즈물들이 최고 인기였습니다.
물론 그 책들의 원본은 성인 버전이지만 어린이용으로 수정되어 나왔던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원본 번역본이 여러 전집으로 계속 나오고 있고,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로도 여러 편 제작되어 인기가 많습니다.
(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 전집입니다 )
어느 작가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다른 두 주인공인 홈즈와 루팡의 대결까지도 책으로 나왔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매력적입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를 독자층으로 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읽는 재미가 큽니다.
일반 문학이라고 하면 '문학성'과 '예술성'을 기본으로 추구하지만 추리소설은 '재미'와 '대중적 인기'를 우선시합니다. 그 점에서 추리소설은 문학의 한 장르이면서도 흥미위주라 통속적이라는 딱지와 B급으로 비하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어떤 장르보다도 현실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면이 있습니다.
일반 문학은 비현실적일 때 오히려 예술성이 돋보이기도 하고 환상적인 면으로 이야기 전개도 가능하지만, 추리소설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전개하면 추리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정통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 하는 그런 단편적인 분류를 벗어나 추리(미스터리)라는 분야가 장르를 파괴시키기도 하고, 다른 장르를 혼합시키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추리기법이 소설적 재미를 부가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통 문학에다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책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 사실에 추리를 가미하여 만든 팩션류의 소설도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B급으로 취급받던 추리 장르가 주류의 자리를 넘나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분야별로도 다양해져 법정 미스터리, 의학 미스터리, 역사 추리소설, 미스터리 로맨스 ,,, 등등 어느 분야에도 빠지지 않고 스토리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많아서인지 음모론, 미스터리, 이런 분야가 각광받고 있는 듯합니다. 요즘에는 추리라는 단어보다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이렇게 세분화해서 장르를 나누기도 합니다.
추리소설은 구성과 스토리가 중요한데 그 시작이랄 수 있는 영국의 경우는 경험주의적 추리가 바탕을 이룹니다.
즉, 우리가 철학이나 논리학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추리소설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영국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나 코난도일의 셜록홈즈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인 탐정들이 경험론의 방법론인 귀납법식 문제해결방식을 통해 살인사건 등을 해결해 나갑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무려 40권)
….
그래서 영국의 탐정들은 신발에 묻은 흙이나 여러 사실,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유도해 범인을 잡습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로 대변되는 유럽대륙은 연역법적 합리론의 추리소설 형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한 프랑스 작가의 "괴도 루팡"이 대표적이랄 수 있으려나요..
연역법적인 추리는 부자들은 어디에다 귀금속을 숨길까? 경찰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등에 대한 대처방식으로 홀연히 도둑질을 하고 사라지는 식입니다.
이탈리아의 지성이라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추리기법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추리소설이라는 구도와 내러티브를 통해 중세시기 교황과 황제의 권력문제와 기독교내 각 교파의 쟁점이 되는 사항들을 풀어냅니다.
살인사건의 이면에 이교도와 기독교내 이단의 문제 등을 등장시키면서 독자를 추리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 소설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삼단논법,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토마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저자인 에코의 기호학, 성경과 요한묵시록 등이 주인공들의 대화나 소재, 배경으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논쟁이 저의 뇌를 자극하여 지적 유희를 만끽하게 해 줍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정통 추리소설은 인간의 심리를 통한 추리에 집중합니다.
외부의 사실보다는 내면의 심리측면의 추리소설이라 ‘심령’ 같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인간의 속성 같은 주제를 많이 다룹니다. 그래서인지 좀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주를 이룹니다. 일본 사람들이 믿는 전통신앙인 정령. 신사와 같은 토속적 종교 색채가 묻어난다랄까요..
링’이나 '고백' 등이 한국에 소개된 대표적인 작품이고, 주온 같은 작품은 호러나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일본은 추리소설 시장도 크고 뛰어난 작가도 많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추리문학상, 추리작가 협회상 등을 통해 작가들이 배출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확대되고 마니아층이 생겨나는 구조적 활성화가 잘 돼있습니다.
이 상들을 통해 이름을 날린 ‘에도가와 린포, 마쓰모토 세이초,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이 네 명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들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정통 추리를 넘어서 일본 특유의 정교하고 섬세하게 설계된 추리소설이 인기인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나오는 족족 우리나라와 전 세계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독특한 색깔을 지닌 유명한 작가들이 많은데 일본 특유의 정서와 사회문제를 추리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평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번역된 대표 작품들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SF 추리 소설 '제노사이드’ 같은 독특하고 혼성 장르 작품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아직은 본격적으로 활성화돼 있지 않아 조금 안타깝긴 합니다. 하지만 요즘 웹툰이나 한류 작품등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독자층 등 저변이 확대되면 곧 대가나 대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추리소설은 재미도 재미이지만 우리의 뇌에 확실한 자극을 주는 게 확실합니다. 책을 보는 동안 뇌를 가만히 있게 놓아두질 않습니다. 작가와 독자는 끝까지 누가 범죄자인지를 놓고 숨바꼭질이나 줄다리기를 해야 됩니다.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유도하는 바에 따라 연역법식으로 대전제나 가설을 세워놓고 소전제, 즉 세부적 사항들을 도출해 낼 수도 있고, 귀납식으로 많은 흔적과 증거로 대전제를 찾아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미스터리에서처럼 인간의 심리, 그 알 수 없는 속마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풀이 과정에서 책 읽는 짜릿한 쾌감을 느낍니다.
셜록 홈즈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 왓슨, 추리란 말이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리는 일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