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자전거 사고.

(58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나의 금주(禁酒) 일기 56 일째는 ‘피보나치 수열과 가을 꽃’ 이였습니다.

저의 관심을 끈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의 대표작 ‘저항의 멜랑콜리' 가 피보나치 수열의 구조를 따르거나 그 수열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특징을 가진 소설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 . . . .
제가 코스모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이 국화꽃들이 소박하면서도 심플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게 이 수열과 황금비에 있었나 봅니다. 벌과 나비들도 그러하겠지요.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58일째

-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자전거 사고.



어제까지의 긴 연휴가 끝나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긴 연휴덕에 맘껏 자전거를 타고 가을경치도 즐기고 책과 글도 즐겼습니다.


그런데 어제 라이딩을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늘 하던 대로 스마트 워치가 ‘자전거 주행 중이신 거 같네요. 자전거 모드를 시행하시겠습니까? ‘ 말을 겁니다.


제가 스마트 워치나 핸드폰에서 ‘yes’ 나 ‘No’ 등등을 눌러줘야 돼서 라이딩 중에 핸들에서 손을 놓고 조작하다가 ‘꽈당’ 해버렸습니다. 사고가 난 겁니다.

내리막길에서 단독으로 넘어진 건데 무게중심을 잃고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러지면서 자전거 핸들에 가슴부위를 부딪치고 길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아파서 한참을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었습니다.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누워서 하늘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갈비뼈가 몇 개 부러졌을까? 5년 전에 넘어졌을 때는 갈비뼈 두 개가 부러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서서히 움직여보니 숨도 잘 쉬어지고 팔다리도 약간 쓰라리긴 한데 움직입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온몸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병원 갈 정도는 아닙니다. 가슴부위 갈비뼈는 통증이 있지만 부러지진 않은 듯합니다. 그래도 후유증이란 게 있어서 사고 났을 때는 모른다는데 인간의 뇌라는 게 매번 그냥 괜찮다고 유혹합니다.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조금 쉬다가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음악을 들으면서 달렸습니다. 핸드폰을 자전거에 잘 끼워놓고 뮤직 리스트를 재생합니다. 유튜브에서 ‘가을에 듣기 좋은 발라드 모음’ 을 누릅니다.

노래가 나오는데 첫 번째 곡은 김광석의 명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입니다.

이른 아침 이슬비도 살짝 내리는데 자전거에 기대어 가고 있는 현재 아픈 내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

...

넘어져서 다친 가슴부위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함께 중얼거립니다.

자전거에 대한 나의 아픈 사랑 노래인 것만 같습니다.


가을 풍경 속으로 계속 달리는데 두 번째 곡이 흘러나옵니다.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입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이 노래도 제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몰랐어요. 난 내가 자만에 빠져 실수를 한다는 걸..

그래도 괜찮아, 갈비뼈는 살아있으니.. ‘


슬플 때 노래를 들으면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던데 정말 딱 그 느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세 번째 노래가 가을 아침바람을 가르며 흘러나옵니다.


지아의 ‘술한잔해요’ 입니다.

...

‘술 한잔해요 날씨가 쌀쌀하니까

따끈따끈 국물에 소주 한 잔 어때요

시간 없다면 내 시간 빌려줄게요’


‘괜찮다면 나와요.

우리의 사랑이 뜨겁던

우리의 사랑을 키웠던

그 집에서 먼저 한 잔 했어요.’

..

우와!.. 이 노래를 듣는데 술 한잔 하자는 간절한 목소리와 애절한 가사가 바람처럼 제 온몸을 휩싸고 돕니다.

넘어져서 아프고 다친 김에 좀 쉬고 싶기도 하고, 노래가사처럼 가을 날씨가 싸늘하기도 하고, 온갖 이유가 가을 단풍잎처럼 내 머릿속을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금주한 지 57일째라고 날도 세어가면서, 이렇게 일기도 써가면서 참고 있는데 엄청난 유혹이 몰려듭니다.


‘술 한잔해요 날씨가 쌀쌀하니까.’

‘괜찮다면 나와요’


라이딩하는 내내 노래가 귀에 맴돕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고 한잔하러 갈까? 점심때쯤 도착하는 곳에서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잔 할까. 온갖 상상에 가슴통증 같은 건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금주를 지켜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온갖 핑계거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 그동안 잘 참아왔으니 이쯤 했으면 됐어’

‘이 정도에서 한잔 마시고 내일부터 또 시작하지. ‘


이런 식으로 인지부조화의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심리적 방어기제도 발동됩니다.

1 단계 음주 경계를 넘어, 2단계 주의, 3단계 경보의 적신호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투혼의 부상 라이딩을 하고 있는 몸의 고통을 음주에 대한 상상과 심적 쾌감으로 대치시키며 달려갑니다.


나의 마음을 흔든 세 노래가 나오고 나서 그 이후로도 가을 발라드 노래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라이딩을 이쯤에서 끝내고 술 마시려는 마음을 굳혀갈 때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김세영 님의 ‘밤의 길목에서’ 입니다.


담배를 줄여야 합니다.

술을 끊어야 합니다.

커피를 줄여야 합니다

새벽이 오네요.

이제 가요.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

어제 마지막을 정리하며 미쳐버리지 못했던

미련이 나를 잡지만

다짐한 이후로 당신의 눈썹이 젖어온다면

차라리 내가 울어요.

...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음주의 유혹을 참아내고 이 글을 계속 쓰고 있다는 겁니다.

아주 예전에 밤새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면서 어스름한 새벽빛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던 시절이 자주 있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이 노래가사가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결국 유혹을 느낀 것도 노래였고, 유혹을 이겨낸 것도 노래였습니다. 아니 노래 가사였을까요?


50여 일 전 처음 금주를 시작할 때 ‘우연과 필연’이라는 주제로 브런치에 ‘나의 금주 일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술, 담배를 줄이거나 끊어보자 하면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오묘한 이치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어제도 그 연장선상 이었을까요. .

그리고 그 글을 쓰기 얼마 전 ‘오만과 편견’이라는 주제의 글에서는 5년 전 자전거 사고에 대한 자만과 오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직도 오만이 남아있다는 증거이겠죠.


요즘 최고 인기 뮤직 애니메이션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에서는 ‘ 우린 노래와 목소리의 힘을 믿는다’ 고 했는데, 저는 노래와 함께 글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여러 우연들과 사연들이 있었지만 이 글을 계속 쓰면서 나의 습관과 의지가 굳어진 면이 클 테니까요. 이 글쓰기가 있었기에 금주를 계속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어제는 여러 해프닝 속에 결국은 음주를 멀리한 채 아주 멀리까지 라이딩을 다녀왔습니다. 연휴기간 중 가장 장거리 코스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보니 오늘 아침 가슴이 뻐근하고 온몸이 욱신거립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겠습니다. 혹시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은 아닌지..


저번 글 오만과 편견 다시 보기

저번글.. 우연과 필연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