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일째) 모든게 좋았다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74일째’는 ‘빵집 시놉시스 (2)’ 이었습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76일째
- 모든게 좋았다
어제는 가을 소풍겸 산책을 가볍게 다녀왔습니다.
서해 바닷가에 들려 점심을 하고 폐교를 책마을로 만든 곳 하고, 가을 산사 주변을 걸었습니다. 그 시간이 다 좋았습니다.
우선 점심은 한가한 바닷바람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함께했습니다.
책마을은 폐교를 도서관 마을로 재탄생 시킨 곳입니다.
이곳을 포함해 학교 전체가 도서관이 되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도 12만 권이 넘는다고 하네요. 보기만 해도 마음의 양식으로 배가 부릅니다.
(옛 시골학교 정취와 책과 주변이 아기자기, 옹기종기)
그리고 가을의 산사는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의 풍광으로 저를 맞아줍니다.
감나무와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날씨가 추워져서 단풍을 제대로 보기 전에 첫눈이 올까 걱정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첫눈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저는 눈 내리는 날마다 이상하게 첫눈처럼 느껴집니다. 그건 첫눈이 주는 느낌이 예견되지 않은 갑작스러움 때문이기도 하고, 눈이라는 이미지에 담긴 차가움과 낭만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도 늘 계획대로 흐르고 준비된 대로 간다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삶은 무미건조할 것 만 같습니다.
산다는 건 어찌 보면 우산 없이 마주친 소나기 같은 거고,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빙판길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기 드라마로 한동안 재미있게 봤던 ‘도깨비’에 나왔던 노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 를 들어봅니다.
첫눈 생각도 그렇고 오늘 소풍 간 장소에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주인공도 다녀갔다고 하고, 주변에 드라마 촬영장소도 있고 해서 생각의 꼬리에 꼬리가 물고 드라마로 연결됩니다.
도깨비에 나온 명대사를 떠올립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결국 날씨는 상관없고 누군가와 함께 한 날들이었기 때문에 좋았다는 이야기이겠죠.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메밀밭에서 첫눈처럼 꽃이 피어 밤에 꽃눈이 날리는 인상적인 장면인데, 점심때 밀로 만든 빵을 먹은데다 저번 편 글 ‘빵집 시놉시스’ 를 어찌할까 하는 생각까지 연결되어 생각의 꼬리가 길어집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드라마 “도깨비”에 배경으로 나왔던 시입니다.
사랑의 충격과 느낌을 물리학으로 잘 표현했는데요,
세 가지 과학법칙을 언급합니다,
질량과 부피, 중력, 진자운동...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통해 사랑도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걸 입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물리학도 사랑의 법칙에 포함된다는 걸 역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굳이 수식으로 표현하면 ‘질량 / 부피 = 밀도’ 입니다.
즉 빵처럼 부피는 커도 질량이 가벼운 것도 있고, 돌멩이처럼 부피는 작아도 질량이 무거운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질량과 중력은 비례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제비꽃 같은 사랑이 나를 큰 힘으로 끌어당긴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든 삶이든 과학법칙이든 모두 공통된 건 밀도가 중요하다는 사실 아닐까요..
제비꽃은 조그마하지만 꽃만큼이나 이름이 참 예쁩니다. 하늘거린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꽃이지요.
겨울나러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무렵에 핀다고 제비꽃이라 부른다는 설과, 꽃의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네요.
하늘거리는 작은 제비꽃잎의 보랏빛이 눈에 들어오면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조그만 꽃잎이 내 눈과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의미를 남기게 되는 것처럼, 책 한 권이 내 인생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한 사람이 내 마음을 뒤흔들게 되기도 합니다
함께 있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좋았다면,그 사람도 나와 함께해서 좋아졌으면 하고 기대하게됩니다.
중력이나 만유인력은 상호작용이니까요..
어제는 날이 조금은 흐렸는데, 가을 분위기에 맞아서 좋았습니다. 바다와 책마을, 산사, 마지막 술집까지 가을냄새가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 술자리는 금주를 실천하는 자리였음은 물론입니다.
날씨가 흐려서 날씨가 적당해서
모든 게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