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째) 일상이라는 그래프
(opening)
저번 편 ‘77일째’는 ‘모든 하루가 여행 - 피곤한 밤 잠이나 잘 자기를’ 이었습니다.
신영복 님이 그의 저서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가장 긴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라고 말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걸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하는 여행은 오랜 시간 먼 곳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는 동안 해야 되는 여행이니 가장 긴 여행입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78일째
- 일상이라는 그래프
오늘은 바람이 매섭고 온도가 뚝 떨어져서 가을이 코끝에 스치기도 전에 겨울이 오려나 생각이 듭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가을엔 갈대와 억새, 구절초와 쑥부쟁이들이 그렇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들이 그렇습니다.
애써 구별해보려 할수록 더 비슷한 점만 보입니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 . .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 . .
장난스럽게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놓고 나무라면서 들국화 종류의 꽃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비슷한 것들을 구별할 때는 주로 모양, 색 같은 눈에 보이는 특성을 이용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겠지만 그건 실험실 몫일테고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대부분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기술이나 공학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업무에서도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 그래프를 많이 사용합니다. 시각적으로 숫자들을 더 쉽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볼수도 있고, 비교되는 것들을 함께 표시해 차이를 보여주기도합니다.
그래프에서는 선이나 도형으로 모든 걸 표현합니다.
오늘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날씨와 온도는 잠잠하다가 급격히 내려가는 포물선이고, 나의 감성은 바람 부는 가을 들판처럼 오락가락하다가 저녁이 돼서야 은은하게 유지되는 선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선들은 무수히 많은 점들을 연결해 놓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점들이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선을 그려냅니다.
나의 삶도 그래프로 보면 그 점들은 나의 하루하루, 또는 한 시간, 일초와도 같은 것 일 겁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 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
이라는 문장이 떠올라 찾아서 다시 읽어봅니다.
사소한 일상처럼 지나가는 수많은 점들이 바로 ‘나’이고 또 그 ‘나’가 앞의 무한한 점들의 영향을 받아 내 삶이라는 그래프에 새로운 점을 찍어갑니다.
그래프에는 변곡점이라는 게 있습니다. 선으로 보면 크게 꺾이는 지점입니다. 물론 상향도 있고 하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변곡점도, 즉 꺾이는 선도 앞의 점들과 연결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 앞점이 있기에 변곡점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중요하지 않은 점은 없습니다.
나의 음주나 금주 그래프는 어떤 모양일까요?
밤이 깊어가기 전에 오늘의 점을 찍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