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째) 피곤한 밤 잠이나 잘 자기를~
(opening)
저번 편 ‘76일째’는 ‘가을 산책 - 모든 게 다 좋았다’ 였습니다.
산다는 건 어찌 보면 우산 없이 마주친 소나기 같은 거고,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빙판길 같은 것입니다.
조그만 꽃잎이 내 눈과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의미를 남기게 되는 것처럼, 책 한 권이 내 인생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한 사람이 내 마음을 뒤흔들게 되기도 합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77일째
- 피곤한 밤 잠이나 잘 자기를~
모든 하루가 여행입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하루라는 시간은 긴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 방구석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 어디도 갈 수 있고, 가상의 세계에서 놀다 올 수도 있고, 가장 아날로그적인 책으로 내가 몰랐던 세계나 상상의 나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신영복 님이 그의 저서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가장 긴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라고 말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걸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하는 여행은 오랜시간 먼곳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하루 하루 일상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는동안 해야되는 여행이니 가장 긴 여행입니다.
어제부터 APEC 회의로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세계의 중요 국가들과 주요 의제가 다뤄지는 걸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제저녁 문화행사를 보면서 우리 문화의 저력도 보게 됩니다.
외국에 나가봐도 우리나라를 보는 게 예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 한두 마디는 기본으로 하는 것 보면 실감이 나곤 합니다.
방구석에서 APEC이라는 세계여행을 하다가 가볍게 라이딩을 나갔습니다.
야외 한적한 곳에 가서 책을 읽으려 나갔다가 바람도 많고 날씨가 추워져서 오들오들 떨다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다가 가방이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그걸 잡으려다 또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갈비뼈 등등이 다 무사합니다.
가방에 넣어간 책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입니다.
최근에 내란사건 재판과 관련해서 많이 언급도 되고, 저의 생각도 정리해 볼 겸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악의 평범성’ ‘불법인줄 몰랐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 요즘 방송에서 많이 듣는 말이죠.
현실에서의 법정, 역사적 입장, 철학적 입장, 인류애 또는 공동체적인 입장, 인간이라는 개인의 나약하고 평범함에 대한 입장들을 다 올려놓고 Guilty (유죄) 여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읽는 김에 브런치에 연재 중인 ‘내 맘대로 문학기행’에 이 책과 함께 두 책(영화)을 함께 묶어서 정리해 볼까 합니다.
그 두 가지는
작년에 봤던 영화 <The Zone of interest>
마틴 에이미스 원작소설..
그리고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이자 영화로 된 작품 <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입니다.
세 작품 모두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인종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르기도 하고, 두 작품은 실화바탕 소설이고, 한 작품은 한나 아렌트의 기록보고서로 의견이 많이 들어간 책입니다.
워낙 대단한 작품들인 데다가 실제 책도 무겁고 그 내용도 무겁고 그래서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래서 가방이 자전거에서 떨어졌나 봅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여행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루라는 여행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라는 긴 여정이 만들어집니다. 놀고먹기만 했어도 잘 휴식했으면 소중한 하루입니다. 행복했으면 더 좋고요.
그런 의미에서 하루 여행이 끝나기 전에 시를 읽습니다.
어둔 밤길 잘 들어갔는지?
걱정은 내 몫이고 사랑은 네 차지.
부디 피곤한 밤 잠이나 잘 자기를..
-끝 -
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 시인의 시입니다.
요즘 세대에 맞는 짧은 시라는 느낌과 더불어 짧은 문장 안에 시인의 감정을 잘 포개 넣은 느낌입니다.
"몫"은 책임이나 의무감의 표현인데 그건 내가 감당하고,
"차지" 라는 표현은 욕심이나 당연한 권리 같은 건데 그건 너에게 넘겼으니,
약간의 불만과 사랑의 짜증 같은 느낌이 훅 풍겨옵니다.
마지막 문구에서는 그래도 잘 자라는 걱정되는 표현을 배치해서 이 시를 완성시킵니다.
제 나름으로 해석하자면
1연 걱정, 2연 짜증과 푸념, 3연 그래도 사랑..
뭐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를 금주를 하는 저의 하루 여행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술 걱정은 내 몫이고, 술사랑은 다른 사람들 차지. . 부디 잠이나 잘 자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해석은 자유이니까요.
인간의 감정을 잘 다루는 게 문학의 영역입니다.
소설이나 시가 "기승전결",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이런 구조를 갖는 이유도 사람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책을 읽고 시, 소설을 읽으면서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마음의 위안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을 접하면서 여러 경우들을 만나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끊임없이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작용을 느낍니다.
오늘 저의 감정여행은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피곤한 밤 잠이나 잘 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