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아래 짜안해지는 것들

(83일째) 흰 장미의 색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81일째는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 건배(乾杯)’ 였습니다.

정치, 경제, 역사를 떠나면 술만큼은 서로 화합하기 좋은 문화요소입니다.
술 금주 81일째는 APEC으로 인해 잠깐 추억의 술여행을 해외까지 멀리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83일째


햇볕아래 짜안해지는 것들

- 흰 장미의 색


이번에 가족 중에 이사 갈 일이 생겨서 준비 중인데 포장이사가 다 해주니 별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이사 가던 날을 기억해 보면 큰 일 치르는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가족모두 바리바리 짐 싸고 묶고, 준비를 한참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포장이사라는 개념이 없어서 용달차를 불러 이삿짐을 하나 가득히 싣고 고무바로 칭칭 묶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던 날이었습니다.

원래 살던 집은 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학교 앞 2층짜리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2층은 전세를 내주고 1층 옆에 있는 상하방이라고 두 칸짜리 방도 세를 받는 집이었습니다.


가까운 곳이라 용달차를 두세 번 움직이거나 큰 차 부르는 게 아까웠던지 가벼운 짐들은 따로 리어카 (일명 구루마) 를 이용해 직접 옮겼습니다.


아버지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형과 내가 뒤에서 밀었던 모양입니다.


리어카를 밀고 가다가 학교 근처라 친구들이 볼까 봐서 형이 도망가버렸습니다. 아마 친구를 보았는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형을 따라 도망갔습니다.



그날 아버지에게 볼싸대기를 맞았습니다. 매가 아닌 손찌검으로는 처음 맞았던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도 충격이 컸던게 분명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웠는데도 도망간 거 보면 리어카가 많이 창피했나 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 . . 생략. .


어느 책에 소개돼있어 읽은 시인데 새겨두고 한 번씩 보게 됩니다.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의 손바닥도 느낄 겸..


햇볕에 드러나면 슬퍼진다는 시의 제목부터 많이 다가옵니다.


짜안해지는 것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서글픈 삶의 구차한 살림들이 이삿짐 차에 실려갈 때 모습이 그려집니다. 거기에 실려있을 일상의 찌든 삶의 모습이 그냥 짜안하고 슬퍼집니다.

이삿짐으로 대표되지만 한 사람의 삶에서도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건 자신의 약점, 단점, 결함, 콤플렉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불행했던 과거나 아픈 상처일 수도 있고, 그냥 현재의 내 삶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일수도 있을 겁니다.


나의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다 표현하며 살지도 못합니다.


집단과 조직이라는 인간사회에 살려면, 특히나 집단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는 혼자 삭히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 민낯이 햇볕아래 드러나게 되면 참으로 민망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 테고, 나의 아픈 상처와 슬픔이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해도 보여주기 싫은것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견디기 힘듭니다.


우연히 햇볕아래 드러나게 되든, 이사하는 날처럼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든, 그걸 마주할 용기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구차하든, 구질구질하든, 자랑스럽든, 그런 것 보다 이게 내 모습이구나를 당당히 바라보게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아이패드에 하얀 장미를 그려보았습니다.

흰 장미가 예뻐 보이길래 그리고 싶어 졌는데 하얀 바탕의 도화지나 화면 위에다가 흰 장미는 어떻게 그릴 수 있나 고민되었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처럼 짙은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다 하얀색을 도드라지게 그리는 게 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색과 빛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우아하게 핀 백장미만 다른 배경을 통해서 보이는 게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빛깔과 그림자, 주변과 갈라지는 윤곽선 같은 것들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무채색의 사물일지라도 그 색이 배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물 안에 있는 색들의 미묘한 차이와 모양새에서 오는 명암 같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쭙잖게 대충 그려서 표현해 봤습니다.

세상사는 모양새도 비슷할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배경이 되는 것들, 즉 가족, 주변사람들, 사는 환경 모두 정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 모양, 빛깔, 그리고 나만의 그림자입니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갖고 태어난 모양새, 살면서 만들어 온 나의 성격과 품성,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 같은 겁니다. 물론 주변과 조화하면서 더 아름다워졌다면 좋겠습니다.


이삿짐에 드러나는 무채색같이 별거 없는 나라는 존재, 나의 삶의 흔적이 구질구질하더라도, 그게 햇볕아래 짠해지더라도 당당할 수 있으려나요.


이제는 어렸을 적처럼 리어카 뒤에서 도망가지 않고 앞에서도 끌 자신이 생긴 건, 낯짝이 두꺼워진 걸까요,

살아보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이사가던 날 그때 아버지는 자식들이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오는 게 자랑스러웠을겁니다.

그런데 도망가버린 아들들을 때린 것 때문에 마음 아프셨던 건 아니었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