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핀 꽃과 술 한잔

(88일째) 화무십일홍 금주백일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83일째는

‘햇볕아래 짜안해지는 것들 - 흰 장미의 색’ 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렸을 적처럼 리어카 뒤에서 도망가지 않고 앞에서도 끌 자신이 생긴 건, 낯짝이 두꺼워진 걸까요, 살아보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이사 가던 날 그때 아버지는 자식들이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오는 게 자랑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 도망가버린 아들들을 때린 것 때문에 마음 아프셨던 건 아니었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88일째

강원도에 핀 꽃과 술 한잔

- 화무십일홍 금주백일



저는 어제부터 강원도에 와있습니다. 이번 주는 회사일정으로 쭉 여기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부터 다시 추워진다는데 어제 속초의 밤공기는 싸늘한 바닷바람 속에 잔잔히 번지는 주변의 불빛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어제 속초길에 지나가다 때늦은 백일홍 꽃을 보았습니다. 보통 10월까지 피는 국화과의 꽃인데 여기에서 잘 적응했는지 찬바람에도 꽃대를 세우고 반갑게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계절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봄은 화사한 파스텔화,

여름은 물기 가득한 수채화,

가을은 알록달록 유채화..

그리고 겨울은 수묵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유채화의 계절입니다.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강원도는 이제 알록달록 단풍의 시간입니다. 내일 설악산 산행일정이 있으니 유채화를 제대로 느껴봐야겠습니다.


하늘과 바다도 질감이 생기고, 어두운 밤과 별도 색과 형체를 갖는 유채화의 느낌은 기름지고 풍부하고 부드러움입니다.

인상파 작가들의 유화그림 화폭 안에서는 노을처럼 색이 변하는 과정을 보게 되기도 하고, 고전화가들 작품에서는 형형색색 다양하고 풍성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림 속 별빛도 단풍처럼 느껴지고, 바다도 외로움이 보이는 유채화는 가을과 많이 닮았습니다.


어제 본 백일홍도 색이 진하고 두꺼운 붓터치로 생긴 질감 같은 꽃잎이라 그림으로 보면 유화과 식물이라 분류하고 싶어 집니다.

(아이패드로 끄적거린 가을 백일홍 그림)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日紅 權不十年)’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꽃은 열흘을 붉게 피어있지 못한고, 권력은 십년을 못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백일홍은 다른 꽃들과 달리 백일을 피어있으니 특이하게 숫자로 된 이름도 갖게 되었습니다.

단년초라 다년초와 달리 1년만 피고 지는데, 백일을 피어있는 걸 보면 다른 꽃들은 열흘씩 십 년을 피어나야 되는걸 이 꽃은 일 년 만에 해치우는 셈입니다.

잘 모르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득한 생존전략 아닐까 싶습니다.

. . .


어제 속초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관하시는 분이 각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말해주세요.’


각자 대답합니다.

‘고기는 다 좋아하고 닭발처럼 징그러운 것만 못 먹습니다.’


‘속초에 왔으니 싱싱한 회가 먹고 싶고, 매운 것은 못 먹습니다.’


제 순서가 되었습니다.

‘음, 제일 좋아하는 것은 술입니다. 술만 있으면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그런데 못 먹는 것도 술입니다. ‘


말도 안 되는 패러독스 같은 저의 말에 다들 궁금하겠죠. 그래서 지금 슬기로운 금주생활 중이라고 여차저차 말하고 저는 술자리 괜찮다고 했습니다. 술먹방에 이미 익숙해졌으니까요.

결국 발길은 돼지갈비집으로 닿았고, 술잔 속으로 스며든 속초의 가을 저녁은 바다 너머로 저물며 하루의 끝을 물들여갔습니다.

그리고 어제저녁 저의 87일째 금주생활도 먹방시청과 인내의 시간으로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2차를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만 바닷가 포장마차의 정취가 오뎅국물에서 올라오는 뽀얀 연기처럼 마음속에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시로 그 정취를 달래보았습니다. 곧 겨울이 오면 금주생활도 접고 포장마차를 한 번쯤 가게 되지 않을까요.


술 한잔

- 정 호 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끝.

이 시는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술과 인생은 왠지 불가분의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다는 말은 나의 괴로움, 아픔, 기쁨을 위해 술을 마셨건만 돌아온 것은 없더라... 이렇게 읽히기도 하고,

나와 인생을 떨쳐놓고 바라봤을 때 '나'는 하나의 주체이고 '인생'은 주체가 걸어가는 길이 됩니다.


바로 인생은 객체가 되어, 내가 걸어가는 길은 내가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의 과정이자 결과인 '인생'은 나에게 어떤 책임질 일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겨울밤 포장마차의 서정성과 술맛 그윽함이 어우러져 나와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유를 줍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 인생에게 술을 사주기 싫어 금주를 하는 걸까요?

그래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을 이렇게 바꿔봅니다.


‘화무십일홍 금주백일’
꽃은 열흘을 못 피고, 금주는 백일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