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에 얽힌 이야기들

(95일째) 주소는 귄력인가 서사인가 선악인가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93일째는 ‘이렇게 한 계절을 보내며 - 때깔 좋은 제철과일’ 이었습니다.


제철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의 꼬리가 음식과 과일에서 꽃과 사람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맛있는 대봉감 홍시로 이렇게 한 계절을 잘 보냅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95일째


주소에 얽힌 이야기들

- 주소는 귄력인가 서사인가 선악인가


제가 예전에 일본에 있을 때 살던 주소가

도쿄도 네리마구 히카리가오카 0초메 00

(東京都 練馬区 光が丘 0丁目00) 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예전 번지 주소하고 체계가 거의 똑같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그 주소체계를 사용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2014년도부터 서양식을 받아들여 도로주소를 사용하는데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아 예전방식과 병행합니다.


일본에 살 때 주소의 번지 앞 지명인 ‘히카리가오카’(光が丘)는 빛의 언덕이란 뜻입니다. 이 동네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피카추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고향이자 영화 속 활동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라고 마니아들이 다니곤 합니다. 이 애니뿐 아니라 많은 작품들 배경이 네리마구안에 있습니다. 이 장소를 영화의 배경으로 한 이유는 애니 제작사들이 모여있는 곳이 네리마구이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의 성지라 불릴만한데 도에이 애니메이션회사가 여기서 역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만화의 아버지이자 신이라 불리는 철완 아톰의 데즈카오사무,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한 미야자키 하야오도 미래소년 코난의 작품활동을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하야오의 지브리 박물관도 여기서 멀지않은곳에 있습냐다. 마쓰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도 물론입니다. 그 이후로도 드레곤볼, 슬램덩크 등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주소 이야기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소가 단순히 행정도구가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이어져왔는지에 대한 서사라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주제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이상으로 주소에 얽힌 이야기가 방대하고 역사적이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가 주소 속 길이름이나 숫자에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각 국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사고 체계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주소는 긴급 구조는 물론 사람을 감시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우편을 통해 물건을 팔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알고보니 신원을 증명하고, 계좌를 만들 때도 있어야 되고, 전염병 원인도 분석하고, 혁명이 성공하면 그것을 기리기 위하여 주소의 도로명에 이름들을 붙이고, 과거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해 이용하기도합니다. 미국은 주소를 돈 주고 사고팔기까지도 합니다. .맨하튼에 있는 트럼프 건물이 비싼 이유가 주소가 좋기때문이라는 신기한 사실도 알았습니다.


특이하게 일본과 한국의 주소체계에 대해서는 별도의 챕터를 할애해서 서양과 주소체계가 다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한자를 사용한 일본과 한국에선 공간을 면중심으로 인식하는 지번 주소를 사용하고, 알파벳을 사용한 서양에선 공간을 도로(선) 중심으로 인식하는 도로명 주소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알파벳은 한 줄로 나열된 도로 같은 선형적인 글자고, 한자나 한글, 일본어는 정방형 글자체계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는 그럴싸해 보이기도 하지만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문자체계나 글자모양보다 주소의 기본이 되는 주거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서양은 길을 먼저 놓고 그 길주변으로 사는 방식이고 우리나라는 주거지를 먼저 만들고 다니다 보니 길은 알아서 생기는 과정이라 주소체계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도로명 주소가 정착되지 않는건 앞에 이야기한 논리따라 길이름이라는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익숙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예전에 큰길, 신작로 정도의 길 이름이 있었고, 어디 뒷길, 산길, 언덕길, 누구네 옆길, 이렇게만 길을 인식하기 때문이라는게 제 주장입니다.


다시 일본 주소 속으로 들어가 네리마구로 가봅니다.

도쿄의 네리마구에서 작품활동하던 데즈카 오사무. .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고 아톰 만화를 그린 분으로 만화에 철학과 환경문제, 반전의식 등의 고민을 담아내고 지금의 일본 망가(만화)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분의 작품 중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이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다룬 작품입니다. 상황이 바뀐 주인공 아돌프 들을 통해 반전 메시지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아돌프 히틀러와 또 두명의 아돌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일, 이스라엘의 반인륜적인 행위의 원인과 문제점을 고발합니다.

이 작품을 꺼낸 이유는 최근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영화 <The Zone of interest>,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리고 소설이자 영화로 된 작품 <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이 책들과 영화를 다시 보면서 선과 악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가, 바로 이 작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 있었습니다. The Zone of Interest 의 글레이저 감독은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으로 이스라엘의 전쟁 책임을 언급합니다.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를 만들어 상을 받는데 그 유대인들이 가자지구에서 다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현시점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용기 있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가자지구 점령에 홀로코스트가 이용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 우리 자신을 대면하고 반영하게 합니다.

그때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십시오. 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으로 치닫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합니다.”

(유럽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시위 -스페인에서)


왜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의 역할을 똑같이 반복하는지, 왜 선한 이웃들이 그 공간에 서면 악이 되는지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 이야기는 기회 될 때 좀 더 깊이 있게 정리해 보도록 하고 주소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도쿄도 분쿄구 혼고 731

(東京都 文京区 本郷 731)


전철 오에도선 혼고 삼초메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만나는 주소입니다. 제가 있던 연구실에 가려면 의대를 거쳐가는데 그곳의 주소입니다. 주변 맨홀 뚜껑들에도 이 번지의 숫자가 박혀있습니다. 저는 그 주소를 잊지못합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침략전쟁을 벌일 때 만주에서 마루타 생체실험하던 부대이름이 731부대였습니다. 그 부대에 일본 의사들이 참여했던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의대건물 731 번지 주소에는 이런 아픔과 참혹한 역사가 담겨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구글 검색:
부대원 배출 및 학위 취득: 731부대에는 도쿄대(당시 도쿄제국대학)뿐만 아니라 교토대, 오사카대 등 일본 주요 대학 의학부 출신자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은 군의관 신분으로 부대에 파견되어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에 가담했습니다.

실험 자료의 악용: 일부 731부대원은 전쟁 중 '마루타'라고 불린 포로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후 도쿄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후 일본 의학계 장악: 731부대 가담자들은 전쟁 후 전범 재판에서 면죄부를 받고 일본 의학계에서 고위직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으며, 이들 중 일부는 대학 총장이나 유명 제약회사(일본 녹십자 등)의 경영진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거기에 참여했던 의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그런일이 있었다고 인정도 안했으니 지금도 당당하게 주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즈음 일본 도쿄는 은행나무가 한창일 겁니다. 도쿄의 상징이 은행나무입니다.

나무 중에서도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오래된 나무로 그 긴 시간 동안 꿋꿋이 서있는 나무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절 전쟁의 상황에서도 한계가 있었지만 도쿄 네리마구에 주소가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와 글을 무기로 반전운동을 했고, 도쿄 분쿄구 731 번지 주소에 있던 최고 수준의 의사들은 의학이란 이름하에 마루타 생체실험을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가였지만 의대를 나오고 의사자격이 있었습니다. 만화속 아돌프란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의 삶의 선택이 엇갈리듯이 작가의 삶도 그러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지금봐도 현실에 맞아떨어지고 다른 어느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0000 가 주소지인 검찰청과 법정에서는 내란의 우두머리(수괴), 중요임무 종사지 또는 적극 가담자 등등을 조사하고 심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더 리더” 그리고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역할자들이 보입니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불법인 줄 몰랐다. 내가 한짓이 아니다. 시켜서 한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