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X)’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와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기업 운영, 고객 접점, 내부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술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DX를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중견기업은 인력과 비용 부담을, 중소기업은 기술 이해 부족을 이유로 DX를 ‘홈페이지 리뉴얼’ 수준으로 오해하며 접근하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글로벌 기업들은 AI와 클라우드를 활용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자동화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며 산업 생태계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이제 한국 기업이 DX를 얼마나 진지하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미래 경쟁력이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DX의 출발점으로 클라우드 전환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단순한 '리프트 앤 시프트(Lift and Shift)' 방식의 이전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진정한 전환은 멀티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전략을 토대로 민첩한 서비스 출시와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실제로 국내 한 제조기업은 생산 공정을 AWS 기반으로 재구성한 결과, 불량률을 30% 이상 낮추고 고객 맞춤형 생산 주기를 절반으로 단축했다.
클라우드 중심 구조로 전환하면 보안 위협도 함께 커진다. 특히 OT(운영 기술)와 IT가 융합되는 스마트 제조 환경에서는 기존의 경계형 보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모델, AI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 분산형 데이터 암호화 같은 보안 기술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도입할 수 있지만,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DX가 실패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내부 저항과 리더십의 부재다. 디지털 기술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현장에 분산되고, 실패를 허용하는 유연한 실험 문화가 마련되지 않으면 기술 도입은 껍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DX는 기술과 문화가 동시에 전환될 때 가능하다.
이제 기업은 단기적 ROI를 넘는 장기 전략 아래 DX를 추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역량 교육의 체계화다. DX는 특정 부서만의 일이 아닌 전사적 참여가 필요한 과제이므로,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 데이터 분석 및 AI 활용 교육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특히 인력 자원이 제한된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나 산업 협회를 통한 공동 교육 플랫폼의 활용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법·제도적 유연성의 확보다. 디지털 기술은 기존 규범과 법제도를 끊임없이 넘나 든다. 클라우드 보안 인증, 데이터 국외 이전, AI 윤리 기준 등과 같은 제도들이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업의 혁신은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미국과 EU는 '리빙 레귤레이션(Living Regulation)' 형태로 법제도를 기술 변화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민관 협의 기반의 제도 혁신이 시급하다.
셋째,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문화의 정착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위계적 구조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과 중심의 책임 구조와 협업 중심의 수평적 조직문화다.
DX는 기술이 아니라 전략이다. 단순한 시스템 도입이나 소프트웨어 교체가 아니라, 기업의 운영 철학과 가치 창출 방식 전체를 재설계하는 장기적 변화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 목적은 환경 변화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
지금 한국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빠른 도입이 아니라 ‘의미 있는 전환’이며, 이를 위해 기술, 사람, 제도라는 세 축을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 우리가 선택하고 실행해야 할 경영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