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그리움이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문신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의 지도이자,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뻗는 손이다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숙명이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경음악이자, 때로 가장 고통스러운 선율이다.
우리는 그리움을 안고 태어난다. 시간의 강물에 떠내려가며, 각자의 생애에 아로새겨진 무수한 '부재'의 흔적들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 그리움은 수많은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마당의 감나무, 대문 옆 우물, 어머니가 빨래를 널던 햇살. 그 풍경은 낡은 앨범 속에 갇혀 있지만, 그리움은 그것을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이제는 목소리마저 아득해진 어머니의 흰 옷자락에 대한 사무친 회한, 풋풋함과 미숙함이 가장 빛났던 첫사랑의 희미한 잔상은 잃어버린 순수를 향한 염원이다.
더 나아가, 그리움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미래를 향해 뻗기도 한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 추억을 통해 삶의 깊이를 재확인하게 하고, 기어코 등을 돌려버리는 계절의 마지막 숨결을 향한 아쉬움은 우리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게 하는 겸허함이다.
이처럼 그리움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른다. '지나간 것'과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현재로 소환하는 고독하고도 찬란한 연금술이다.
이 감정은 특히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증폭된다. 비 오는 날의 젖은 창가에서, 혹은 가을날 낮은 음률 속에서, 그리움은 숨겨진 뿌리를 찾아 헤매는 강물처럼 의식의 밑바닥을 파고든다. 이 증폭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온전하지 않음을, 무언가 소중한 조각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음을 절감한다. 존재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움은 비어 있기에 무겁다.
이러한 그리움의 양면성이야말로 인간 삶의 역동적인 엔진이다.
그리움은 문학에서 영원한 주제이다. 모든 시와 소설은 결국 '부재'의 빈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움은 현실의 모순과 괴리를 깨닫게 하는 날카로운 도구이자, 작가에게 상실의 미학을 부여하는 필연적 자원이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게 하여 깊이를 더하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하여 문장을 숭고하게 만든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움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양심과 같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현재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성장의 동력이 되며,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희망하고, 회한을 느낄 줄 아는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준다. 그리움은 우리 삶의 지평을 넓히는 섬세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리움에 잠식될 때, 그 빛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과도한 그리움은 현실의 발판을 잃게 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는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과거를 신전으로 둔갑시켜 숭배하고, 현재의 삶을 평가절하하는 위험한 환각이 된다.
우리는 몽상과 후회의 늪에 빠져 오늘이라는 순간이 가진 작고 소중한 행복과 노력을 외면하게 된다. 과거의 아름다운 고통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현실로부터 고립시키고, 잃어버린 낙원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포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움은 우리를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하게 만들거나, 혹은 가장 높은 곳으로 비상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힘을 지닌다.
결국 이 격렬한 감정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그리움을 '수용하되, 포로가 되지 않는' 태도를 요구한다. 그리움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이끈 동반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현재라는 순간 속에 그리움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오늘 만나는 이에게 온기를 건네고, 얻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내 안의 세계를 가꾸어야 한다. 그리움은 결핍의 신호가 아니라, 당신이 여전히 사랑할 줄 아는 존재임을 속삭이는 편지다.
그리움은 완성될 수 없기에 아름답다.
우리는 이 묵직한 감정을 품고, 그 무게만큼 현재를 더 충실히 살아낸다. 이것이 그리움이라는 숙명 안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삶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