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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상실

by 이정호

인간은 누구나 기대 속에 살아간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하길,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어루만져주길,

그리하여 오늘의 작은 노력이 내일의 보답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기대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이지만,

동시에 현실과 부딪힐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은 조용히 균열을 낸다.


그러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순간에,

삶은 뜻밖의 기쁨을 건네며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기대의 상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삶의 진짜 온도를 배운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걸고 한 가지를 기다린다.

면접의 결과, 사랑의 고백, 혹은 단 한 통의 메시지.

그러나 그 기다림의 끝에 “죄송합니다”라는 문장 하나가 도착할 때,

세상은 조용히 우리를 외면하는 듯 느껴진다.


그 순간 마음속의 시간은 멈춘다.

손끝에 남아 있던 온기조차 식어버리고,

‘내가 기대한 만큼 세상도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는데’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서 흩어진다.


기대는 노력의 다른 이름이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수학처럼 냉정하다.


그래서 사람은 깨닫는다.

기대는 내 뜻대로 계산할 수 없는 감정의 방정식이라는 것을.


가끔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날에,

삶은 뜻밖의 선물처럼 미소를 건넨다.

무심히 지나친 카페 창가에 오래전 친구가 앉아 있거나,

잊힌 이름이 어느 날 문득 메시지로 돌아오기도 한다.


기대를 내려놓은 마음은

봄눈이 녹은 자리에 피어나는 풀잎처럼 순하다.

그 자리에 찾아오는 기쁨은 계산되지 않았기에 더 진실하다.


우연의 손길은 준비된 순간보다 더 아름답고,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삶은 우리가 설계한 도면 위가 아니라,

뜻밖의 여백 위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사람은 종종 기대를 놓는 순간,

비로소 삶의 깊은 결을 만진다.

그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오랜 실패 끝에서 피어난 적은 가능성일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행복은 언제나

‘기대하지 않음’이라는 순수 속에서 온다.

기대를 잃는다는 것은,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숨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 자리는 처음엔 텅 빈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는 ‘있는 그대로의 삶’이 천천히 스며든다.

기대가 사라지면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조용해진다.


불안한 기다림이 잦아들고,

우리는 비로소 눈앞의 일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그때 깨닫게 된다.

삶은 언제나 ‘내가 바라던 방식’이 아니라,

‘삶이 선택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기대의 상실은 절망이 아니라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면,

작은 것들이 다시 소중해진다.


새벽의 냄새, 누군가의 손끝,

우연히 들려온 노래 한 소절이 다시 마음을 흔든다.


기대를 버릴 때 비로소 삶은 더 넓어진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삶은 우리가 설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삶은 더 다채롭다.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의 기쁨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언젠가 알게 된다.

기대가 이루어지는 기쁨보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평온이 더 깊은 행복이라는 것을.


삶은 늘 예상 밖에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연의 얼굴로 다가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기대의 상실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기대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며,

삶을 새로이 사랑하기 위한 준비다.


기대가 사라진 그 자리에,

우리는 조용히 미소 짓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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