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림으로 빚어진 시간들이 아닐까요.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려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고요히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태어나 기다림 속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렘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움입니다.
설렘을 품은 기다림은 참 아름답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나와 그이를 기다리며 뛰는 심장 소리,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 친 전역일을 바라보는 병사의 눈빛, 드레스를 골라 입으며 결혼식 날을 손꼽는 예비신부의 미소, 오랜 준비 끝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첫 출근을 기다리는 떨림, 평생 꿈꿔온 여행지를 향해 떠날 날을 세며 짐을 싸는 설렘. 이런 기다림은 그 자체로 행복입니다.
하지만 기다림이 늘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체통을 여는 마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긴 밤을 지새우는 환자의 불안, 집행일을 기다리는 이의 무거운 침묵, 언제 올지 모를 성공을 기다리며 견디는 외로운 시간들. 이런 기다림은 우리를 시험합니다.
기다림은 이렇게 양면을 지닌 채 우리 곁에 머뭅니다. 때로는 기쁨을 주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깁니다.
자연도 기다림 속에서 숨 쉽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선선한 가을바람을 기다리고, 매서운 추위 속에서 봄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씨앗을 뿌린 농부는 황금빛 열매를 기다리고, 그물을 던진 어부는 물때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계절을 타고 흐르고, 삶의 리듬 속에 녹아듭니다.
같은 비가 내려도 누군가에겐 단비가 되고, 누군가에겐 절망이 됩니다. 갈라진 땅을 적시는 비는 농부에게 축복이지만, 야외 행사를 앞둔 이에겐 낙심입니다. 기다림도 그렇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이 빛나면 다른 한쪽은 그늘에 가려집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기다림'이란 말을 떠올리면 왜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는 걸까요. 분명 괴로웠던 기다림도 많았을 텐데, 우리는 유독 그리움과 설렘을 먼저 기억합니다.
아마도 우리 마음이 본능적으로 아픔은 잊고 행복은 간직하려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기다림은 점점 더 아름답게 채색되고, 감정은 증폭되어 추억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괴로웠던 기다림조차 그리운 순간으로 남는 것처럼요.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친구의 전화를, 택배 상자를, 달력에 표시한 그날을. 기다림은 삶에 여백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익게 합니다.
기다림은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일지 모릅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소중한, 보이지 않는 아련함.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집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살아있는 한 기다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숙명처럼 같은 시간을 걸으며, 때로는 우리를 야속하게 만들고 때로는 더없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동안 가장 빛납니다. 정작 그 끝에 다다르면 허전함이 밀려오지요. 그래서 우리는 기다림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다림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아픔도, 기쁨도, 분노도, 사랑도 모두 품을 수 있는 넓은 그릇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감정들은 조화를 이루고, 삶은 깊이를 얻습니다.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기다림'은 불편한 단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조금 더 나은 내일과, 조금 더 성숙한 당신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시간을 원망하지 마세요. 기다림 그 자체가 이미 당신의 삶을 채우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