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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울타리를 넘어 일상 속 동반자로

by 이정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혹은 누군가와 단순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법(法)’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집을 살 때,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을 때, 보험사와 교통사고 보상을 협의할 때조차도 법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법이 필요해졌을 때, 많은 사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빠진다. 법령 전문을 접해본 이들은 하나같이 “읽어도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든다. 왜 이렇게 법이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질까?


1. 낯선 문장과 복잡한 용어의 세계


한국의 법령체계는 성문법을 중심으로 계층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체계 위에 자리 잡은 법조문들은 대부분 전근대 일본법의 영향에서 비롯된 딱딱한 한자와 전문용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불가항력(不可抗力)’, ‘양도담보(讓渡擔保)’, ‘당해행위(當該行爲)’, ‘저당(抵當)‘, ’기소유예(起訴猶豫)‘ 등 일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문장을 빼곡히 메우니 일반인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조문끼리 서로 인용하는 방식, 법률용어를 반복적으로 정의하는 방식 등이 더해지면서 독자는 금세 집중력을 잃고 만다. 이는 마치 얽히고설킨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준다.


사실 법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용어를 갖추는 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한 번의 정의로 수많은 사례를 포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전문적·축약적 표현들은, 국민에게 필요한 실제 정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취약하다. 법은 일반인을 위한 ‘보호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문턱 높은 ‘지식 엘리트의 전유물’로 인식되기 쉬워지는 이유다.


2. 접근성을 가로막는 높은 문턱


법령을 검색하고자 하면 우리는 국가지정 포털인 ‘국가법령정보센터’를 비롯해 여러 사이트를 마주하게 된다. 모든 법령과 자치법규, 하위 고시까지 무료로 열람이 가능하니, 얼핏 보기에는 “참 편리해졌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 접속해 본 사람 중 상당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한다. 검색어 몇 개를 입력해도 수십만 건의 결과가 쏟아지거나, 목적과 다른 조문들이 뒤섞여 나타나기에 필터링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법률 초심자들은 조문 제목부터 낯설어한다. ‘민법 제 OO조’니 ‘형사소송법 시행규칙’이니 하는 단순한 제목만 놓고도 그 의도를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런 복잡하고 광범위한 자료 앞에서 일부는 검색을 포기하고, 일부는 변호사를 찾아가고 싶어도 비용 부담에 망설인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가 존재함에도 그 존재를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라는 점 역시 접근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3. 법률상담, 어디서 받아야 하나


막상 계약서나 공문서가 집으로 날아오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라는 두려움부터 느끼게 된다. 정부 문서들이 과거보다 쉬운 표현을 쓰도록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런 때,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일은 돈도 시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정부, 지자체, 공익기관에서 저렴하거나 무료로 운영하는 상담 창구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률 홈닥터’ 같은 제도는 소외계층이나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에게 큰 힘이 된다. 또 각 시·군·구에서 제공하는 주민 대상의 법률상담 서비스나,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무료 상담 이벤트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필요한 순간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4. 법, 어려움에서 친밀함으로 바꾸는 세 가지 키워드


그렇다면 국민들이 법을 더 가깝게 느끼고, 실제 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 친절한 언어로의 전환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은 “한 단어의 어휘 선택이 전체 법률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난해한 한자어와 긴 문장구조를 개정해 쉬운 한국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입법 단계에서부터 일반 국민의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주석 달기’, ‘예시 삽입’, ‘쉬운 용어 병기(倂記)’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


- 법령정보 플랫폼의 혁신

단순히 방대한 자료를 일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검색 필터와 이용자 가이드를 구체화해야 한다. 주요 생활 영역(부동산, 고용, 가정법률 등)에 따른 카테고리 정리나 주제어별 Q&A, 맞춤형 시나리오 안내 등을 제공하면 훨씬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다.


- 상담 제도의 실질적 홍보 및 확대

법률 홈닥터나 대한법률구조공단 같은 공익서비스가 존재함을 여러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SNS, 지역 케이블 방송, 신문, 라디오까지 활용해 각종 사례와 함께 구체적 절차를 설명해 준다면 국민들이 무작정 포기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필요시 전국 어디에서나 손쉽게 상담을 예약하고, 후속 조치까지 연계되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5. 법을 ‘규제’에서 ‘보호’로 다시 바라보기


사실 법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그러나 언어나 구조가 지나치게 어렵다면, 보호가 필요한 시민이 정작 도움을 받지 못하고 법을 ‘폭포수 같은 규제’로만 오해할 수 있다. 법이 얼마나 친숙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지, 그리고 국민이 법적 도움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지가 바로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법은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때로는 등불처럼 활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난해한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일반인이 법령검색과 상담 서비스에 접근하기 쉽게 제도를 다시 설계하며, 실제 사례에 기반한 구체적 매뉴얼과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법은 더 이상 특정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누릴 수 있는 공공재로 거듭날 것이다. 법과 친해지는 과정은 결국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법은 규제의 족쇄가 아닌 보호의 울타리로 기능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정말로 추구해야 할 ‘법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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