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스키 코르사코프 < 세헤라자데>, 예술은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어보셨나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관현악 모음곡 <세헤라자데>는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작곡가는 자서전에서 이 곡을 특정 사건의 묘사로 이해하기보다는, 청중이 마음껏 이국적 상상을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각 악장에 붙은 표제는 단지 힌트일 뿐, 그 자체가 해석의 전부는 아닌 것이죠.
<천일야화>의 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샤리아르 왕은 전 부인이 흑인 노예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배신감과 증오심에 사로잡힙니다. 그 뒤로 그는 모든 여자를 불신하게 되고, 매일 밤 새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 하룻밤을 보낸 뒤 이튿날 아침이면 처형하는 잔혹한 일을 반복합니다. 이때 스스로 왕의 아내가 되기를 자청한 인물이 바로 세헤라자데입니다. 그녀는 매일 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워낙 매혹적이어서 왕은 다음 날 밤을 또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1001일 동안 이어지고, 그 안에는 알리바바와 신드바드 같은 모험담, 사랑 이야기, 기이한 전설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결국 세헤라자데의 지혜와 이야기의 힘은 왕의 증오심을 누그러뜨렸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 모음곡을 이끌어가는 두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위엄 있고 위협적인 샤리아르 왕의 주제, 그리고 섬세하고 가느다란 선율의 세헤라자데 주제입니다. 금관과 저음 현악이 장중하게 외치는 왕의 주제는 폭군의 위압감을 드러내고, 그 위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듯한 바이올린 독주는 세헤라자데의 지혜로운 목소리를 상징합니다. 그녀가 “제가 이제 당신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라고 속삭이는 듯, 그 선율은 곡 전체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1악장 〈신드바드의 배〉에서는 마치 파도에 흔들리는 항해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펼쳐내며, 왕과 세헤라자데의 두 주제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합니다. 특히 이 장면은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해군 장교 시절 원양항해를 경험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려낸 것으로, 목관과 현악기의 파도 같은 움직임은 실제 바다 위를 지나는 배의 정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2악장 〈칼린다르 왕자의 이야기〉에서는 방랑하는 왕자의 고행담이 선율 속에 은근히 드러납니다. 원래는 왕자였으나, 비극적인 운명과 모험 끝에 눈이 멀거나 쫓겨나 세상을 떠도는 인물로 해석되지요. 이야기마다 왕의 냉혹한 주제가 끼어들지만, 세헤라자데의 부드러운 선율은 언제나 그 긴장을 풀어내며 새로운 모험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에 이르면, 음악은 뜻밖의 결말을 맞습니다. 샤리아르 왕의 주제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하프 반주와 함께 세헤라자데의 선율이 나타나고, 그 위에 왕의 주제가 온화하게 어우러지며 곡은 고요히 끝맺습니다. 폭군의 선율이 누그러지고, 두 주제가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순간 이것이 바로 <세헤라자데>의 진정한 완결입니다. 음악은 사랑의 힘, 이야기의 힘이 어떻게 잔혹함을 녹이고 화해로 이끌어내는지를 들려줍니다.
즉, 이 곡은 단순히 이야기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음표 하나하나가 샤리아르 왕의 마음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과 분노로 가득 찬 차갑고 위협적인 선율이 이어지지만, 세헤라자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끌리며 점차 누그러지고, 마침내 사랑에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음악이 증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헤라자데》의 종결은 단순한 이야기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사랑에 빠져 변해가는 한 인간의 내면을 음악이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죽음을 유예시키며 삶을 이어갔고, 음악은 폭군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왕도 세헤라자데도 아닌, <세헤라자데>의 진짜 주인공은 이야기와 음악이 아닐까요. 예술은 이렇게 인간을 변하게 하고, 때로는 구원받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