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살다 보면 삶이 어긋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작게는 대중교통 시간을 착각해 약속에 늦어 사소한 지각으로 하루의 흐름이 전부 어긋난다든지, 크게는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소중한 인연을 놓쳐버리는 일까지 말이죠.
우리는 어긋남을 늘 후회나 불운으로 받아들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구요.
이런 우리를 위해, 어긋나는 순간에 더욱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는 음악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19세기 말 미국에서 태어난 '래그타임(Ragtime)'
'래그타임(Ragtime)’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Ragged 찢겨진, time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반듯하게 흘러야 할 리듬이 중간중간 비껴나가고, 엇박이 생기면서 음악은 울퉁불퉁한 표정을 짓지만 바로 그 어긋남이 래그타임의 묘미이죠.
이 장르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시시피 강을 끼고 무역으로 번성하던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 역사를 거치며 수많은 문화가 뒤섞인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크레올(Creole) 공동체, 즉 유럽계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의 혼혈 자손들은 유럽식 음악 교육과 악기 연주에 능했지만, 사회적 지위는 점점 흔들리며 흑인 공동체와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음악적으로 특별한 결실을 낳았습니다. 정제된 유럽식 화성과 형식, 그리고 흑인 민속 음악이 지닌 자유로운 리듬감이 서로 섞인 것이지요. 특히 싱코페이션(syncope, 당김음)이라 불리는 아프리카계 리듬은 규칙적인 행진곡풍 베이스 위에서 예상치 못한 엇박을 만들어내며 래그타임을 탄생시켰습니다. 따라서 래그타임은 단순히 재즈의 전신이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고급음악과 대중음악이 서로 비껴 만난 지점에서 태어난 독립된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의 결이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빚어낸 하나의 역사적 실험이었던 셈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77회 참고>
오늘은 수많은 래그타임 가운데에서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곡을 소개하려 합니다.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의 〈Graceful Ghost Rag, 우아한 유령 래그〉입니다.
윌리엄 볼컴은 클래식적 서정과 래그타임의 활력을 하나로 결합한 작곡가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곡은 특히나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있습니다. 197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작곡한 곡으로, 그의 아버지는 우아하고 고운 품성과 함께 춤을 굉장히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마치 이곡을 감상할 때면,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는 유령의 모습이 상상되죠. 이 곡은 왼손은 행진처럼 꾸준한 박자를 이어가고 오른손은 그 위를 마치 비껴가듯 흐르며 의도적 엇박을 만들어냅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어긋나며 만든 겹겹의 층위 안에서는, 익숙한 리듬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의 미학이 은밀히 피어납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을까요. 수많은 어긋남 사이에서, 때로는 예기치 못한 미학이 피어나곤 합니다.
약속에 늦어 들어선 카페에서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엇나간 길 위에서 뜻밖의 풍경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계획에서 벗어난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풍경을 만들어주곤 하지요.
저는 캐나다 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의 연주를 추천드립니다. 그는 현대 음악과 전통을 가로지르는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래그타임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곡이 가진 서정과 추모의 정서를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춤추듯 가볍지만 동시에 기억을 품은 듯 깊이 울리며, 삶의 어긋남을 따뜻한 위로로 바꾸어내는 힘을 전해줍니다. 아믈랭의 연주와 함께, 각자에게 떠오르는 그 유령의 얼굴을 천천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