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停留), 흐르지 않는 시간

김창열화백의 회고전과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

by 여자말러리안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김창열(1929~2021) 화백의 회고전에 다녀왔습니다.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집요하게 그려낸 작가였습니다.

1970년대 파리에서 처음 시작된 물방울 연작은 반세기 넘게 이어졌고, 이제는 한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의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선 시간의 흔적이자 기억의 결정체입니다. 그의 물방울에는 전쟁의 상처, 이국생활의 고독, 삶의 수많은 인고의 순간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물방울은 맑고 빛나는 동시에 슬픔을 머금은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린 물방울은 단순히 둥근 방울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빛이 굴절되어 생기는 명암과 가장자리의 미세한 윤곽과 투명함 속에 번지는 그림자까지 세밀하게 담겨있습니다. 물방울 하나는 그 자체로 작은 우주며, 내부의 공간과 외부의 세계까지 동시에 비추는 듯합니다.

본래 물방울은 흘러내려 시간이 지나 사라져야 하지만, 그의 캔버스 위에는 멈추어있죠.


그의 작품들은 찰나의 순간과 감정을 캔버스에 붙잡아 둡니다. 김창열 화백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과 감정을 붙잡아 두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형상으로 남겨 뒀습니다. 결국 예술이란, 본래 사라져야 할 것들을 붙잡아 두려는 인간의 노력이 아닐까요.


미술은 눈앞의 찰나를 시각적 형상을 기록하는 예술이라면,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 두는 예술입니다. 그렇기에 음악이 시간예술이라고 불리는 까닭이지요. 결국 예술이란, 사라질 것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눈앞에서 금세 흘러내릴 물방울을 붙잡아 두고자 했던 화가처럼, 음악가들 또한 소멸하는 순간을 멈추게 하려 애써왔습니다.

전시를 보는 동안,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곡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 )가 작곡한 작품으로, 바이올린(혹은 첼로)과 피아노를 위한 곡입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 속의 거울을 연상시키듯, 단순한 선율과 화음이 끝없이 반사되며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아노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아르페지오를 꾸준히 반복하고, 바이올린(혹은 첼로)은 느리게 선율을 이어가며 그 위에 투명한 울림을 더합니다. 이 곡은 패르트의 대표적 ‘틴티나불리(tintinnabuli)’ 양식을 보여줍니다. ‘종소리’라는 뜻의 이 양식은 단순한 화음과 반복을 통해 깊은 명상적 울림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음악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듯한 인상을 주며, 듣는 이를 고요한 내면으로 이끕니다.

시간을 멈추고, 음악 속에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일상 속에서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평범한 순간들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나눈 짧은 눈빛, 스쳐 지나간 대화, 혹은 고요히 혼자 머물던 저녁 같은 시간들 말입니다.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에 그러한 순간들을 담아냈듯, 패르트는 단순한 음형을 반복하며 그 순간들을 오래도록 머물게 합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소중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려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을, 음악은 한동안 우리 곁에 머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잊힌 줄 알았던 기억이 다시 선명하게 다가오고, 흘러간 시간이 마치 내 안에서 잠시 멈춘 듯 느껴집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그리고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근원적 두려움 앞에서 예술은 잠시나마 우리에게 위안을 줍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각자에게 붙잡고 싶은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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